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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의 일화들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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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4.18  20:5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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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

지난 3월 18일 방송통신대 교육학 교수인 딸 내외와 함께 경북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陶山書院)을 보고 왔다. 1000원 권 지폐 속에서 자주 만나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선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아홉 차례나 장원급제한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6-1584)가 35세 연상인 퇴계를 스승으로 모시고 도학(道學)을 이어 후세에 전하겠다고 다짐하며 올린 시는 이러하다.

“시냇물은 수사(洙泗)에서 나뉜 가닥이고, 봉우리는 무이(武夷)를 이었습니다. 학문을 닦으면서 살아가시니, 이룩한 도덕이 이 한 방(房)에 가득하십니다. 뵙고 싶던 회포를 푸니 구름 속의 달을 보듯 머리 트이고, 웃음 섞인 말씀 듣고 나니 어리석은 저의 생각 바로잡힙니다. 소자가 와 뵌 뜻은 도학을 받잡고자 함이었으니, 시간을 헛보내셨다고 생각하지는 마옵소서” 이에 대해 퇴계는 이렇게 율곡에게 답을 보냈다 “늦게사 돌아와 할 일이 아득하더니 고요한 이 곳에도 햇빛이 비쳤음인가!, 찾아온 자네 만나 학문의 바른 길을 가르쳤네, 학문의 길 힘겹지만 탄식 않고 나아가면 외진 이 산골을 찾아온 일이 후회되지 않으리라” 퇴계가 주자학(朱子學)에 뜻을 두고 20년 간 탐구하여 쓴 책이 다음과 같다.

① 43-56세에 주자의 저서를 수집해 해설했으며 왕명에 따라 서관(書館)에서 인쇄한 「주자대전」과 중국판 「대전서」를 대조해 개정하였다. ② 56세에는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편찬하였다. ③ 57세에는 주자가 지은 「계몽전의」의 잘못을 고치고 쉽게 풀이했다 ④ 58세에는 「주자서절요」를 완성하고 「자성록」과 「고경증마방」(古鏡重磨方)을 편집했다. ⑤ 59세 땐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를 집해하였다. ⑥ 60세 땐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의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을 지도했다. ⑦ 63세 땐 「송계원명 이학통록」(宋季元明 理學通錄)을 완성했다. 퇴계는 주자(朱子)를 공자 다음가는 아성(亞聖)의 자리로 올려 존중하였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지내시겠냐고 하자 후학을 교육하는 일에 종사하겠다고 했다. “산중에 사는 늙은이가 웃으면서 묻기를/ 장차 퇴계는 무엇을 하리오?/ 몸소 밭갈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혀로 대신 밭을 갈리라” 그리고 정원에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 오이를 심었고 길가엔 버들을 심었다. 조경을 마친 후 쓴 시다. “내 할 일은 저 높은 벼슬이 아니니 조용히 시골 마을에서 살아가리라/ 소원은 착한 사람이 많은 것이라네/ 이것이 천지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이다” 선조가 퇴계를 옆에 두고 자문을 얻고 싶어했다. “경이 떠나가시면 다시는 만날 수가 없지 않소 마지막으로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으니 부디 이야기를 해주기바라오” 하지만 굳이 사양하고 낙향하였다.

퇴계는 민심과 도덕에서 떨어지는 것은 치자(治者)의 가장 큰 병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전해 올렸다. 퇴계는 1570년 12월 4일(양력 1570년 12월 31일) 조카 영을 불러 유언을 남겼다.

“비석을 쓰지 말라, 작은 돌에다가 벼슬과 이력은 모두 없애고 다만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 쓰고 뒷면에는 세계(世系)와 출처를 간단히 쓴 다음 내가 지어놓은 명(銘)을 쓰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면 실상에 없던 일도 장황하게 쓸 염려가 있으므로 남에게는 맡기지 말라고 했다. 퇴계가 스스로 지은 일부분은 이러하다 “내가 품은 뜻을 누가 믿으며 나의 감패를 누가 알리/ 내가 사모하는 옛 성현의 마음 진실로 내 마음과 부합하도다/ 오는 세상을 어찌 알리오 현실에도 얻은 것이 없거늘/ 근심 속에서도 즐거움 있고, 즐거움 속에도 근심 있었네/ 자연대로 살다가 돌아가노니/ 이 세상에 무엇을 다시 구하리” 현실에도 얻은게 없는데 내세에 무엇을 더 구하랴는 말은 최고의 학자가 최고의 겸양을 보여준 것이다. 아, 잘 영근 곡식일수록 고개를 숙인다더니 과연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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