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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 |
솥(鼎)을 걸 때나 카메라를 세워놓는 거치대는 삼각대(三脚臺)로 돼 있다. 가장 안전하게 세우기 위한 물리적 조건이다. 같은 원리로 국가가 건강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입법부(국회), 사법부(법원), 행정부(정부각부처)가 균형을 유지하며 협력과 견제를 이루어야 하고 제 4부인 언론이 이들의 공무집행을 객관적으로 보도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옛날엔 협의의 정부(행정부) 안에도 3정승(영의정(총리), 좌의정, 우의정(부총리))이 최종까지 조율하고 검토하도록 했다.
이런 구도를 전제하고 훌륭한 정승 한 분을 소개 한다. 황희(黃喜/1363-1452)는 우유부단하면서도 인자한 재상으로 기억되고 있다. 56년의 관직 생활 중 24년을 재상으로 지냈고, 그 중 18년간 영의정의 자리를 지켰다. 그와 비교되는 경력자는 88세까지 살면서 세 왕의 치세에 걸쳐 영의정을 6번 지낸 오리 이원익뿐이다.
황희 정승은 그야말로 세종대왕이 심복처럼 의지했고 사람들은 태산과 북두칠성처럼 존경했다. 그는 온화한 성품에 유능함까지 겸비한 인물이었다. 고려시대 공민왕 12년에 태어나 조선시대 문종 2년에 죽었으니 여말선초(麗末鮮初)의 격변기에 살았던 사람이다.
중국 대륙에선 원(元)이 쇠퇴하고 명(明)이 일어나던 시기다. 고려는 원의 핍박(外)과 권문세족의 착취(內)로 국운이 기울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있었다. 공민왕의 개혁이 실패하고,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조선이 건국되자 황희는 신왕조에 협력을 주저했다. 그러나 아까운 재주를 묵히지 말고 백성을 구제하라는 주위의 충고를 받아 30세(태종 3년)에 벼슬길에 올랐다.
젊은시절 황희는 직언(直言)하는 신하였다. 관료탄핵에 맞서 “천하의 총명으로 옳고 그른 것을 분명히 짐작하실 겁니다.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 하면 어찌 폐단이 없겠습니까”라며 홀로 왕에게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다. 사헌부의 감찰, 사간원 우습유를 지내며 바른 소리를 하다가 함경도 경원 교수로 강등되기도 했다. 그런 황희를 등용한 것은 태종이었다.
1405년 황희는 박석명의 천거로 승정원 지신사(훗날 도승지로 왕의 비서실장격)에 올랐다. 예조, 이조 판서를 거쳐 승승장구하던 그가 1416년 좌천되는 일이 생겼다. 세자가 주색에 빠져 임금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을 때 세자를 옹호했기 때문이다. “세자가 아직 어린 소치입니다”라고 두 차례 변호하다가 관직에서 쫒겨나고 남원으로 귀양 가 7년간 지내면서 일체의 방문객을 사절했다.
그를 다시 불러 온 것은 세종이었다. 양녕대군을 옹호했지만, 세종은 60세의 그를 재등용했다. 그 후 87세로 물러나기까지 27년간 세종을 지근 거리에서 보필했다.
황희는 6진 4군의 개척을 적극후원했다. 김종서의 6진개척을 지원했고 5번 야인정벌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으며, 명나라에 보내는 전첩서엔 축소해서 보고했다. 국익을 위한 실리외교를 추진한 것이다.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면 전담해서 접대, 설득,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공(功) 못지 않게 과(過)도 있었다. 홍유종의 첩을 노비로 삼고 남원부사에게서 뇌물도 받았다. 친구인 안숭의 아들 안숭신을 특채해 구설에 올랐고, 대사헌 시절 황금을 뇌물로 받아 ‘황금 대사헌’ 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럼에도 태종과 세종은 그의 경륜과 식견을 높이 사 그의 과오를 용서하고 등용했다.
그는 영의정 시절 회의 때마다 먼저 발언하는 일이 없었다. 왕들은 ‘황희정승 의견대로 하라’며 무한 신뢰를 보냈지만, 황희 자신은 정승들의 모든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민의와 정승들의 의견이 집약된 최대공약적 결론을 도출해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세종같은 대통령과 황희같은 장관 및 총리가 필요하다. 태산같이 높고 태평양같이 깊으며 몽골벌판같이 넓은 도량의 인재가 그리운 때다. < 저작권자 © 대전경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