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중식 기자

조선업계의 불황, 그리고 국내에 불어닥친 그늘은 한국경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가늠할 수 있는 좌표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입장 발표, 그리고 연일 들려 오는 소식은 한국 조선업계에 대한 대대적 구조조정과 자구노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단순한 경제논리로 본다면, 작금의 이 사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요와 공급, 그리고 경쟁체제에서 뒤쳐진 산업은 자연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말로 귀결된다.

5월 들어 한 언론은 최근의 사태와 관련, 거제시에 "연내 2만명 실직 우려"라는 기사를 실었다. 그것도 모자라 "거제 지역은 5월 황금연휴 종료와 어둠이 드리워진 도시"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거제시 또한 "조선업 불황이 이어진다면 올해 안 경남 거제지역 조선업 관련 근로자 2만여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이는 조선경기가 조기에 회복되지 않으면 거제에서 대규모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실직 사태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판단에서다.

2016년 3월 말 현재 25만 6894명의 거제시는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도시로 떠올랐다. 거제시와 고용노동부는 지난 같은 시점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근로자는 총 8만9133명으로 집계했다. 이는 직영, 사내 하청, '물량팀'으로 불리는 외부 하청업체 근로자를 모두 포함한 규모다.

거제시의 전망은 내년에도 수주 제로 현상이 이어지고 일감이 줄어들게 되면 내년 3월에는 근로자 수가 6만1천866명으로 현재에 비해 30.5%(2만7267명)까지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위기감이 고조되자 거제시는 ‘조선산업 위기극복 종합대책본부’를 운영하기로 하는 등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조선업계 불황이 곧 지자체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시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TF팀을 구성하는 한편, 거제시는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직접 타격을 받게 될 하청업체 지원을 위해 중소기업 육성자금 융자 지원 규모를 10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확대했다. 또 조선소 협력사들의 지방세 납부기한을 연장하거나 징수를 유예하기로 했다.

필자는 문득 지난 70~80년대 한국경제의 명암이 떠올랐다. 반도체와 철강, 그리고 자동차와 해외건설 등이 제자리를 잡기 이전, 한국 수출의 최전선을 담당했던 섬유산업, 그리고 내수 산업의 주축이었던 석탄산업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한 푼의 달러라도 더 보유하기 위해 24시간 공장을 풀가동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심지어는 머리를 잘라 만든 가발까지, 그 무엇하나 '수출 확대=달러 보유'라는 공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석탄산업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석유제품이 넘쳐나면서 사양길로 접어든 석탄산업은 '산업합리화'란 명분 하에 먼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남긴 발자취는 영화 세트장이나 견학시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그들은 한국경제의 산 증인이자 가장 큰 피해자였다. 학비를 벌기 위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산업체 근로자(학생)의 모습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무작정 상경했던 공단 근로자들 또한 어느덧 50~60대를 넘긴 '구세대'로 남았다.

그들의 역사가 없었다면, 오늘 날의 한국경제가 있었을까. 산업화 세대라고 불리는 그들은 곧 한국경제의 밑거름이자 효시였다. 이 같은 측면에서 바라볼 때, 한국 조선업계의 불황이 오롯이 해당업계만의 잘못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세계적 경기침체는 그렇다 치자. 비단 불황이 한국에만 몰아닦친 바람이 아니므로. 하루가 멀다하고 가격과 기술을 앞세워 한국을 추월하는 이웃 국가를 보면서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부으면서도 경쟁력을 키우지 못한 기업도,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위적인 합병유도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오롯이 대책이란 '자구책=구조조정=인원감축'이라는 공식을 내세우기 전, 최소한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사람은 하나라도 줄이는 일이 먼저다.

"암울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하늘을 쳐다 볼 수만은 없죠? 그래도 잊지 않고 저희 지역을 찾아주신 여러 손님들이 고마울 따름이죠"

한 그릇에 6000원 하는 국밥에 공기밥 한 그릇을 덤으로 선뜻 더 내어 준 현지 식당 사장님의 한 마디. 그들에게 더 이상의 좌절과 위로의 말은 필요 없었다. 한 번이라도 더 찾아 주는 게 지역경기를 살리는 길이고, 진정 그들을 위한 길임을 알기에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국민소득 2만 달러시대도 좋고, 창조경제도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 때 한국경제의 발전을 위해 밤낮으로 피땀 흘린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것이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고, 한국경제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아야 한다. 합리적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그들에게 이 나라, 이 정부가 해 줄 보상은 무엇인지 생각할 때다.

장중식/대전경제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