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상 변호사

우스개 소리로 세상살이 하면서 경찰서, 검찰청, 법원 근처에는 안가는 게 좋다고들 합니다. 물론 변호사 사무실도 포함되겠지요. 이런 곳에 들락거리는 것은 필시 잘못을 했거나 누군가와 분쟁이 있다는 의미이고, 살면서 그런 일을 겪지 않으면 좋겠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본인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다른 사람과 분쟁에 휘말리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즉, 형사범죄야 본인이 조심하고 회피하면 되지만 지인에게 급전을 빌려주었다가 받지 못한다든지, 물건을 공급해 주고 그 대금을 받지 못한다든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손해를 입어 그 배상금을 받아야 할 경우, 하다 못해 월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 등 각종 민사분쟁에 뜻하지 않게 연루되어 골치를 썩이는 일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식자재 유통업을 하는 A씨는 조그만 식당을 하는 B씨에게 1년 넘게 식자재를 공급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식당 영업이 잘 안되면서 A씨는 B씨로부터 식자재 대금 1300만원을 받지 못하고 있던 중, 얼마 전 B씨는 식당을 폐업했고 식자재 대금을 준다고 말을 할 뿐 전혀 지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A씨는 B씨를 상대로 물품대금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여 법원의 판결을 받아 이 판결을 근거로 B씨에게 대금 지급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만일 B씨가 대금을 주지 않을 경우, 이 판결을 가지고 B씨의 재산에 대해 경매 등 강제집행을 하여 그 경매대금에서 돈을 받아가야 합니다. 만일, B씨가 가진 재산이 전혀 없다면 판결을 받아 가지고 있어도 현실적으로 대금을 지급받기는 어렵습니다. 이때 판결은 10년간 유효하므로 후에라도 10년 안에 B씨의 재산이 생겼을 때 강제집행을 할 수는 있습니다.

위 사례처럼, 채무자가 돈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경매 등 강제집행을 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판결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민사분쟁이 생겼을 때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민사판결을 받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민사소송 절차가 번거롭고 복잡하여 법률전문가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하기가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며, 재판기간도 수개월씩 오래 걸리기 때문에 금액이 크지 않을 경우 재판을 꺼리고 결국에는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법은 정식 소송을 거치는 일반 재판보다 비용은 덜 들이면서도 훨씬 쉽고 간편하게 빨리 판결 또는 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는 결과물(집행권원)을 받을 수 있는 몇가지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우선, 공증제도가 있습니다. 채권자와 채무자가 공증인가를 받은 공증인 사무실에 가서 금전 지급을 언제까지 하겠다는 내용을 공증인으로부터 확인받아 놓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정증서는 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인정됩니다.

둘째, 소액사건심판제도가 있습니다. 2,000만원 미만의 금전 지급을 청구하는 것을 소액사건이라 하고, 소액사건 청구가 있는 경우 법원은 채무자에게 채권자의 청구대로 이행할 것을 권고하는 이행권고결정을 하며, 채무자가 이행권고결정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2주 이내에 이의를 하지 아니하면 이행권고결정이 확정되며, 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습니다. 만일 채무자가 이의신청을 하면 통상 한차례 정도 재판을 연후 판결을 선고하게 됩니다.

셋째, 지급명령제도가 있습니다. 채권자가 지급명령을 신청하면 법원은 서류심사만 한후 채권자의 청구대로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채무자가 지급명령을 송달받고 2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하지 아니하면 지급명령은 확정되며, 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습니다. 만일 채무자가 이의신청을 하면 정식 소송을 진행하게 됩니다. 지급명령은 소액사건과 같은 청구금액의 제한이 엇으며 서면심리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법정에 출석할 필요가 없고 소송비용이 정식 소송에 비해 1/10에 불과하여 신속하고 저렴하게 판결과 동일한 결과를 받을 수 있습니다.

넷째, 민사조정제도가 있습니다. 법원에 민사조정을 신청하면 법원은 조정담당판사나 조정위원회에 회부한 후, 조정기일을 정하여 양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여러 가지 사정을 참작하여 조정안을 제시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양 당사자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합의가 이루어지면 조정조서에 합의내용을 기재하며 이 조정조서는 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습니다.
만일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법원의 강제조정결정에 대해 2주 이내에 양 당사자 중 1명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정식 소송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민사조정은 자유로운 분위기에 충분히 의견을 말할 수 있고, 조정기일에 한번 출석하는 것으로 종료되며, 소송비용이 정식 소송에 비해 1/5에 불과하여, 신속하고 저렴하게 판결과 동일한 결과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섯째, 제소전 화해제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양 당사자가 거래관계로 인하여 향후에 민사분쟁으로 번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상호간에 미리 약속한 내용을 가지고 법원에 제소전 화해 신청을 하며, 법원은 화해기일을 지정하여 참석한 양 당사자에게 상호 약속한 내용에 대한 인정여부를 확인하고, 그 내용을 화해조서에 기재하며, 이 화해조서는 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습니다. 만일 화해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하여야 합니다. 제소전 화해는 화해기일에 한번 출석하면 되며, 소송비용이 1/5에 불과하여 신속하고 저렴하게 판결과 동일한 결과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공증, 소액소송, 지급명령, 민사조정, 제소전 화해 제도는 쉽고 간편하게 정식 소송을 거치지 않고도 판결 또는 판결과 동일한 효과가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실제 많이 이용되며 대단히 유용한 제도로서 민사분쟁이 발생할 경우 적극적인 이용을 권합니다. /이인상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