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값 폭락에 유통마저 막힌 국내 한우가 설 땅을 잃고 있다.
 

당장 20일부터 캐나다산 소고기 수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정부고시에 따라 8년만에 재개되는 캐나다산 소고기는 수입과정을 거쳐 빠르면 2월 중순부터 시중에 유통될 전망이다.
 

특히 수입산 소고기 수입을 위해서는 해외 현지의 수출작업장을 선정해야 하는데 주무부서인 농식품부는 이미 지난해 작업장 선정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캐나다산이 국내에 유통되기까지 최소한의 ‘제동장치’마저 풀린 셈이다.

◇ 8년만에 수입재개, 어떤 과정과 조건으로?

논란이 된 캐나다산 소고기는 일본과 중국에 비해 현지 위생조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더욱이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했던 광우병이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동안 18차례나 발생한 점도 주목대상이다.
당장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가 국회심의결과보고서에서 캐나다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에 반대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 6월 두 나라가 타결한 수입위생조건을 보면, 30개월 미만 뼈를 포함한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지만 특정위험물질(SRM)과 기계적 회수육·분리육, 분쇄육, 쇠고기 가공품, 십이지장에서 직장까지 내장 전체 등은 수입하지 않는다고 명시됐다. 또 캐나다 수출 육류작업장은 우리나라가 현지점검 등을 통해 승인하고 광우병이 추가 발생하면 검역을 중단하도록 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검역조건보다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산 쇠고기는 특정위험물질이 아닌 내장 부위 등을 수입해야 하고 수입 중단 절차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은데 따른 비교분석 결과다.

하지만 국회는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이 캐나다와 체결한 수입위생조건보다는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본은 20개월 이하의 뼈 있는 쇠고기, 중국과 대만은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했다.

특히 지난 2월 캐나다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표기했다. 실제 일본의 경우 전수 조사를 명시했고, 유럽연합은 48개월령 이상을 전수 검사하지만 캐나다는 도축 소의 1.3~1.5%만 광우병을 검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캐나다산 수입은 전격 이뤄졌다.
국회가 겉으로는 우려를 표했지만, 국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미온적 태도를 경지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주장한 국익은 무엇일까.

◇ 정부, “WTO(세계무역기구) 패소시 수입조건 더 열악”

정부는 소값 급락으로 축산농가가 어려운 시기에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은 한치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임박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2003년 5월 캐나다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했지만, 2007년 '광우병 위험통제국' 지위를 확보한 캐나다는 수입을 재개하지 않는 한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WTO에서 한국이 승소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판단 하에 캐나다와 양자협상을 벌여 지난해 6월 쇠고기 수입 재개에 합의했다. 당시 정부는 캐나다에 지난해 연말까지 수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고 캐나다는 대신 세계무역기구(WTO) 패널절차를 중지하고 실제로 수입이 재개되면 WTO 제소를 철회키로 결정하는 선에서 분쟁은 일단락됐던 것이다.

하지만 국회 심의가 늦어지면서 연말까지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자 캐나다는 다시 “WTO 제소 절차를 재개하겠다”며 우리 정부를 압박해 왔다. 이에 정부는 "전체적인 국익을 생각할 때 고시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WTO 패널분쟁에서 패소하면 더 불리한 조건으로 수입해야 하고 다른 나라들도 시장 개방을 요구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적정한 타이밍에 캐나다산을 수입하는 것이 국익 차원에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 커져가는 축산농가 위기감, 대책은 없나

이 같은 과정을 지켜본 농가들의 반응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전체 수입물량의 10% 이내에 해당하는 양이지만 가뜩이나 어려워진 한우농가에 추가로 짐을 얹은 꼴이라는 것이다.
남호경 전국한우협회 회장은 지난해 공청회에서 "광우병 상시발생국 캐나다 쇠고기를 수입하면 쇠고기 혐오로 인해 한우소비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며 "특히 급격한 소값 하락, 수입 쇠고기 증가 등으로 생존의 갈림길에 선 한우농가의 생존권을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하필이면 이때 수입을 재개해야만 했을까.  국회조차 심의보고서를 통해 축산농가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한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축사시설 현대화 등 축산업에 대한 예산상의 지원을 대폭 강화하고, 자율도태 산업에 대한 보상금 지원과 사료 구매자금 상환 기간 연장 등을 요구사항으로 명시하는 선에서 심의보고를 마쳤다.

국회 농식품위원회가 “현시점에서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이 적절하지 않다고 의원 다수가 반대했다”고 종합의견을 내면서도 일부 의원들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패소 판정을 받으면 더 불리한 조건으로 캐나다산 쇠고기를 수입할 수밖에 없다”며 찬성 의견을 밝힌 점도 어정쩡한 태도를 방증한 셈이다.

문제는 지금이 소값 급락으로 축산농가의 어려움이 가중된 상황에서 수입재개조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수입이 재개되더라도 한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과도한 경계를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수입금지 조치 이전에도 캐나다산 쇠고기는 전체 수입쇠고기의 4%에 불과했다”며 “원산지 표시제, 수입쇠고기 유통이력제 등을 통해 시장 영향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현명한 소비자 만들려면 '매뉴얼' 공개해야

문제의 핵심은 소비자 몫에 달려있다. 미국산 소고기 파동으로 불거진 ‘촛불집회’ 등 대규모 반발에도 불구, 미국산 소고기는 국내 주요 시장에 공급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더 이상 외제를 배척하고 국산품을 애용하는 것이 곧 애국이라는 국수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며 “제품의 품질과 안전성이 답보되지 않은 상황이 더 문제인만큼 국내에 유통되는 소고기를 선택하는 것은 가격과 품질사이를 오가는 소비자의 몫일 수 밖에 없다”는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아무리 외국상품이 밀려들어도 국내산을 최우선시하는 일본 소비자들의 행보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뒤에는 검역과 안정성 검사 등 최소한의 기본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정부와 해외식품에 비해서 손색이 없는 상품을 만들겠다는 기업의 의지와 기술이 곳곳에 녹아있다. 그것이 바로 수출입 의존보다 우월한 내수경제의 힘으로 입증된 일본 경제의 현실이다.

어떤 이유와 경로를 걸쳤던 간에 우리의 식탁 중 절반은 수입산이 점령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무조건적인 찬반논란에 앞서 왜 그것이 안되는 지, 되려면 어떤 안전장치를 갖추었는지, 나아가 개방이 불가피 할 경우 국민을 현명한 소비자로 만들어 줄 ‘매뉴얼’ 만큼은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장중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