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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의 시적 상상력
김완하 한남대 교수  |  webmaster@dj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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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1  11: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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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완하 교수.

나의 1980년대 시는 고개와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내 ‘고개의 시적 상상력’에는 시의 토대가 마련된 1980년대의 배경이 짙게 깔려 있다 하겠다. 1980년 광주에서 강력하게 시작된 민주화의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우리는 5.18을 맞이하게 된다. 그 어느 날 전국적으로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대학가에는 휴교령이 내려지며 대학정문에는 계엄군들이 총을 들고 서 있었다. 대학생들은 집에서 리포트만을 쓰며 지내야 하는 숨 가쁜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광주에서 전해져 오는 소식들은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것들이었다.

나는 짐을 싸들고 산으로 들어가야 했다. 금산의 진악산에 있는 보광사라는 절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와있는 고시 준비생 등 대학생 네 명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엄격하게 일과를 정해놓고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시를 쓰면서 스스로를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야만 나를 지탱할 수가 있었다. 밤이면 산 아래로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금산읍의 반짝이는 불빛들이 나를 유혹했지만, 나는 스스로의 금족령을 내리고 그곳에서 철저히 나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나를 철저히 고립 속에 가둠으로써 나를 추스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오일마다 열리는 장날이면 금산읍으로 내려가 분주하게 흘러가는 장꾼들 틈에 끼어 서 있곤 하였다. 따가운 여름 장터에서 붐비는 사람들 속에 나를 한없이 부려 놓고 장터를 훑는 시간으로 나를 잊곤 하였다. 그러다가 파장이 되면 쓸쓸함을 안고 다시 터벅터벅 2시간 반이나 걸어서 산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때 산으로 오르는 비탈길은 너무 힘겹고 숨찬 것이어서 어둠 속을 걸으면서 흠뻑 땀을 흘리고 나서야 어느 정도 나의 가슴속 열기들이 사그러 들곤 하였다. 그 어둠 속으로 돌아오면서 올려다보면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기도 하였다. 마치 그 별들은 어둠 속에서 나 여기 이렇게 살아 있다고 외치는 듯했다. 아래의 시는 그 당시에 씌어진 것이다.

음력 칠월, 보름 장은 유난히 더웠다 / 삼방(蔘房) 골목으로 / 흘러가는 장꾼들 / 지난 장 밑도는 시세 다툼 / 바람 한 줄기 돌지 않는다 // 웃음과 한숨 뒤엉켜 흐를 때 / 봉황천 물은 조심조심 기어내리고 / 우시장에선, / 소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 쇠전다리 건너 찢어진 포장 / 튀밥 기계를 안고 있는 사내는 / 몇 줌 옥수수 거짓처럼 부풀리며 / 화덕의 불 목숨처럼 가꾼다 // 시든 햇살도 쓰러지고 / 진안행 막차가 / 먼지를 퍼붓고 떠난 후 / 어스름 장터, // 씀바귀 줄기 흰 물 맺히듯 / 돋아나는 별 / 무리져 내리는 별빛만 / 쉬지 않고 풀리는 샛강에 / 몸을 담근다 「금산장날」 전문

그 날 그렇게 금산장의 막차가 먼지를 퍼붓고 떠나면 나는 외롭게 파장의 장터에 홀로 남아서 또 다시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 한참씩이나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때가 있었다. 그 밤 막차는 장꾼들을 가득히 싣고 어둠 속을 헤치면서 갔다. 아마 그 버스는 어느 마을 앞의 고갯길을 털털거리면서 힘겹게 올라갔을 것이다. 제 몸뚱이 안에는 막걸리 냄새 풀풀 풍기는 시골 사람들을 가득히 싣고서. 그리고는 한참 지나 어느 마을 동구 밖에 한 무리의 사람들을 쏟아놓곤 하였을 것이다.

어느 날은 금산의 만악리에 있는 친구의 집을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바로 그날도 금산장날이었다. 나 스스로는 장꾼이 아니었지만 장꾼들과 함께 털털거리는 막차에 몸을 싣고 가면서 무언가 한낮에 땀을 흘린 그들과 동류의식을 느끼며 현실의 중압감을 덜어낼 수가 있었다. 버스 안에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장꾼들의 설렘이 일렁이기도 했다. 또한 그들이 가족들을 위해 사가지고 돌아가는 생선의 비린내가 풍기기도 하였다. 그렇게 내 시는 그 시대의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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