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택 연세소아과병원장.

‘GRIT’이라는 책을 보았다. 우리 말로 표현한다면 ‘끈기’ 혹은 ‘근기(根氣)’라고 하고 싶은데,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 포인트에 그렇게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입학한 자질과 능력이 대단히 뛰어난 학생 중 중도 탈락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 이유에 대한 타당한 설명을 하기 위해 대상을 연구하면서 지적 능력이나 체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아냈다고 한다.

저자의 주장은 사관학교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분야에서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공통된 차이는 ‘근기(根氣)’가 충분한 사람과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사회의 청년실업 문제를 생각했다.

청년실업이 우리 사회에서 커다란 사회문제로 다루어지는 것은 이제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직업이 생기면 감지덕지하며 어렵던 6-7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얘기이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소위 3D 업종이나 규모가 작은 회사에 가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취업이 안 된다고 한다. 심지어 정작 몇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입사한 회사를 1년도 안 돼 퇴사하는 신입사원의 비율이 30%정도 된다는 신문 기사를 보기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보다는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회사에 들어가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다는 풍조가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청년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 ‘GRIT’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정부가 아무리 돈을 풀어 바람을 일으키려 해도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청년실업을 넘어 요즘에는 ‘청년실신’이란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청년실업자’와 ‘신용불량자’의 합성어라고 한다.

60-70년대에는 부모들이 소를 팔아 자식들 대학 등록금을 대주었기 때문에 상아탑(象牙塔)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은행에서 대학 등록금을 쉽게 대출해 주지도 않았을 것이고, 금리도 10%가 훌쩍 넘을 정도로 높아 자칫 대출 한 번 잘 못 받으면 집이 없어질 수도 있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금융기관이 쉽게 대출해준다. 금리도 많이 내렸다. 그렇지만 졸업 후에 취직을 하지 못하면 대출금을 갚을 길이 없다. 이렇게 쉽게(?)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

대다수 청년들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청년실신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렇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청년실신의 주된 원인으로 ‘청년들의 무분별한 소비행태’를 꼽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통계자료도 존재한다. 최근에는 청년들조차 이러한 결과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해외여행은 가야 하고, 최신 휴대전화가 나오면 사야 하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마이 카가 없으면 데이트 한 번 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과거에는 돈이 없으면 배 고프고 추웠다. 배가 고프다는 것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존본능을 자극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엄청난 굶주림을 겪어본 사람은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그 집착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GRIT’으로 성공했다는 표현이 가능하다.

반면에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충동적인 소비문화가 청년실신의 한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렇다면 좋은 학교 입학하고, 자격증 많이 따고 토익 점수 올리는 데 투자도 해야 하겠지만 청년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바로 ‘GRIT’이 아닐까 싶다. 문제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와 같이 이 근기를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심어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근기는 성격적으로 타고 나야 할 것 같기는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느끼고 고생해야 얻어지는 것은 아닐까? 당장 내 아이들에게 어떻게 근기를 심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마땅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다. 이미 성인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도 한다’고 하셨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