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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아오자이’ 나라, 베트남을 가다3차례에 걸친 인도차이나 전쟁, 피해의식과 자존감 공존
장중식 기자  |  dje4552@dj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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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2.01  08: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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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아마도 ‘전쟁’과 ‘아오자이’, 그리고 ‘다문화’ 이 세 가지가 아닐까 싶다.

전자의 경우, 3차례에 걸친 ‘인도차이나 전쟁’이 인식된 탓일 테고, 그 다음 ‘아오자이’는 베트남 전통의상을 입은 베트남 여인의 신비스런 모습, 그리고 후자는 한국사회 곳곳에 베어있는 국제결혼이 낳은 다문화 가정 때문일 것이다.

속칭,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역사 속에서 베트남 현지를 들여다보면 이 또한 다소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 국민의 5분의 2에 해당하는 인구가 15세 미만의 국가. 그만큼 경제성장 가능성이 잠재된 나라, 여기에 주체적 시각으로만 바라본 인도차이나 전쟁의 겉과 속, 갸녀릴 것만 같은 아오자이 베트남 여인의 속내와 국민성, 우리가 알고 있는 결혼문화의 허구성 등 다시금 되짚어볼 것이 너무도 많은 나라, 그것이 베트남이다.

속칭 인도차이나 반도(베트남에서는 이런 표현을 싫어한다고.....그 이유는 인도+중국의 합성어를 쓴 표기인 탓에)에 위치한 베트남은 서북쪽에서 동남쪽까지 최대길이는 약 1650km로 한반도의 약 세 배에 이르는 국가다. 북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라오스·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수도는 하노이다. 2012년 추계 인구는 약 900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월남파병군을 환송하는 한국 모습
“전쟁을 알아야 베트남이 보인다”

베트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가 ‘베트남 전쟁’. 엄밀히 말하자면 ‘인도차이나 전쟁’이라는 표현이 더 옳은 듯 싶다. 그 이유는 베트남 자국 내 전쟁이 아닌, 인도차이나 반도를 둘러싼 국제간 전쟁 성격이 더 강한 탓이다.

아무튼 베트남 전쟁 또는 인도차이나 전쟁은 3가지로 나뉜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와 베트남 간의 전쟁이 있고, ‘2차 인도차이나전쟁’이라고 불리는 베트남과 미국 간의 전쟁이 있다.
그리고 베트남 통일 이후, 중국과의 국경분쟁 등을 빌미로 중국, 캄보디아와 치룬 전쟁을 3차 인도차이나전쟁이라 분류한다.

1차 전쟁은 2차 대전이후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지화하려 하자 베트남의 자주독립을 외치며 호치민 장군을 필두로 북베트남군이 봉기하자 프랑스 정권 대리인 격인 남베트남 정부군이 이를 제압하려는 목적으로 치룬 전쟁을 뜻한다.

1946년 12월19일부터 1954년 8월1일까지 8년 여간에 걸친 전쟁 끝에 프랑스군은 철수하고 베트남의 남북시대가 시작된다.

   
▲ 베트남 전쟁(아이를 구출하는 모습)
2차 인도차이나전쟁은 1차인도차이나 전쟁이 베트민(호치민정권)이 승리하고 남북으로 분열되었을 때, 인도차이나반도 공산화방지(도미노이론)를 명분으로 직접적인 개입을 시작한 미국이 1965년 통킹만 사건을 유발시켜 북베트남에 항공폭격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서구 열강의 대리전 성격이 짙었던 이 전쟁(1959~1975)을 통칭, ‘베트남전쟁’으로 부르기도 한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일부 우방국들을 상대로 16여년 동안 항전을 편 끝에 북베트남군(중국과 소련, 북한 등의 지원을 받음)이 승리했다.

3차 인도차이나전쟁은 중국과 베트남 간 전쟁을 뜻하지만 이 또한 국제적인 함수관계가 높다.
1975년 남부 베트남을 함락시킨 통일 공산베트남은 전통적으로 반중감정을 갖고 있는데다가 구 소련과의 연대감이 공고했기 때문에 인접한 중국의 견제를 받게 된다. 

사회주의 체제에 기반을 둔 북베트남은 자본주의 색채가 강한 자국 내 화교들의 영리행위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이를 중국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인식한 중국은 베트남 침공을 선언했다.
1979년2월 시작된 이 전쟁은 결국, 베트남과 인접한 캄보디아로 불똥이 튀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을 물리친 베트남은 캄보디아에 크메르루지(폴포트 정권)군을 소탕한다는 목적으로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 전쟁 또한 국제적인 역학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 사이공 함락으로 발생한 '보트피플'
베트남을 잃어버린 미국이 1975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과 한 배를 타 ‘적국’으로 간주하였던 노선을 전격 탈피하고 캄보디아 지원에 나섰다. 이를 곱게 볼리 없는 베트남 또한 1975년 이전까지만 해도 동맹국으로 여겼던 캄보디아를 침공하기에 이른 것이다.

구 소련과 라오스를 등에 업은 베트남군은 중국과 북한의 지원을 얻고 있는 캄푸치아(현 캄보디아)의 수도를 함락시키고 만다. 오늘날까지도 캄보디아를 자신의 속국이라고 생각하는 베트남은 이름도 유명한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앙코르왓트’ 입장수익의 70%를 챙길 정도다.

한 마디로 베트남의 20세기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자존심을 건 전쟁의 성격이 크다. 또한 세계 최강으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사실상 승전했다는 자체 하나만으로 자부심이 큰 나라이기도 하다. 이는 베트남 국민 머릿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자존심과도 큰 연관이 있는 대목이다.

‘지구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아픔과 함께 ‘베트남이 닮고 싶은 경제롤모델’로 여기고 있는 우리나라와의 상관관계는 참으로 미묘하다. 한국전쟁과 더불어 영원한 우방국가인 미국이 시작한 베트남 전쟁 참전, 그로 인한 반한감정(아직도 한국을 적대시하는 부류가 만만치 않다) 속에서도 ‘친근한 사돈 나라’라는 인식이 공존하는 베트남, 그것은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지구촌 현대사와 결코 무관치 않다.

   
▲ 1시간에 1달러를 받는 시클로(Cyclo-Pousse)
한국산 차량 VS 오토바이 천국

지루했던(?) 베트남 전쟁역사를 뒤로 하고 하노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꼬박 5시간에 걸친 여행의 시작은 베트남 항공에 탑승한 여승무원의 복장부터다. ‘아오자이’로 불리는 베트남 전통복장에 문양을 넣은 승무복 자체가 이채롭다. 오전 9시에 출발, 오후 2시에 도착했지만 현지 시각은 정오다. 2시간 늦은 시차 때문.
동남아 지역이라 한국 날씨와는 달리 무척 덥겠다는 편견도 잠시. 하노이 공항은 한국의 초겨울 날씨만큼이나 쌀쌀하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정학적
   
▲ 자가보유 1000만대가 넘는 오토바이천국
환경 때문에 한여름 날씨는 베트남 수도인 호치민에 가서야 비로소 느낄 뿐이다.

제2의 수도로 불리는 하노이 공항은 시끌벅적한 가운데 손님맞이가 한창이다. 입국수속을 밟을 때부터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임을 방증이라도 하듯, 군복풍의 직원(이곳에는 지극히 평범한 복장이지만), 그리고 곳곳에 배치된 경찰과 도로 곳곳에 걸린 붉은 바탕에 노란 별 하나가 선명한 국기 등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눈에 익은 간판과 차량이 속속 띄기 시작했다. 한국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이름이 알려진 ‘LG’ 와 ‘삼성’, 그리고 대우와 쌍용 등 대기업들이 문구가 즐비하다.가이드의 말대로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1992년 12월 수교에 합의한 이후 속속 베트남에 진출을 시작한 결과다.

   
▲ 베트남의 과거와 현실이 공존한 시내 모습
하노이 최대의 ‘랜드마크72’로 불리는 고층빌딩이 한국 건설사(경남건설)에서 시공을 담당했고(하노이 관광코스 중 필수로 꼽힐 정도라는 후문), 베트남에서 굴러다니는 버스의 80% 이상이 한국산버스이고 고급교통수단인 택시는 둘 중 하나가 한국산 경차라니 더 이상 무얼 덧붙이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즐겨 찾는 ‘롯데리아’도 곳곳에 들어와 있고, 대형마트 또한 속속 진출하고 있다. 베트남 전체교역 규모 중 10%에 육박하는 수출을 베트남 현지 한국기업에서 담당하고 있을 정도다.

한 가지 놀란 사실은 그렇게 한국자동차가 많아도 출퇴근 시간대는 물론, 하루 종일 눈에 들어오는 오토바이 행렬이 전체 교통수단의 7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현지 방문 내내 시내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내달리는 오토바이 행렬. 그것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베트남 온 국민이 애용하는 ‘보물 1호’인 탓에 베트남은 자동차와 사람보다 오토바이가 먼저이고 우선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교통신호는 물론, 탑승인원 제한도 따로 없어 보였다.(하루는 오토바이 1대에 4명까지 탄 모습을 볼 정도). 그렇다고 심한 경적소리도, 그 누구 하나도 고함을 지르거나 하는 경우가 없어 보였다. 저렇게 많은 오토바이가 중앙선도 없는 길을 교행할 때면 크고 작은 사고라도 날 텐데 하는 걱정 또한 기우에 불과했다. 이따금씩 자전거를 타는 학생들의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 세계수출 1위를 자랑하는 베트남커피(전시장)
애호가도 잘 모르는 '세계 제1의 커피수출국'

한국도 ‘커피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커피를 즐겨찾는 매니아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즐겨찾는 커피원산지 수출국 중 제1위가 베트남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이미 중국의 신화통신은 지난 2012년 베트남이 브라질과 콜롬비아를 누르고 세계 최대 커피 수출국 자리를 지켜냈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2011년 10월부터 2012년 9월까지 베트남에서 생산된 커피콩이 160만 톤에 이른다. 이는 30억 달러(한화로 약 3조3400억원)에 이르는 규모다. 최근 하노이 남부 동나이 지방 커피 재배 농가들이 한 달 먼저 커피를 수확하는 등 베트남이 커피 생산에 주력한 결과다.

다만 베트남에서 생산된 커피를 즐겨찾는 국가가 독일(12.3%)과 미국(12.2%)이기 때문에 생소할 뿐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커피를 재배해온 베트남은 프랑스 선교사가 남부 지방에서 커피 재배를 시작한 후 재배물량이 급증해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 브라질에 이어 세계 2위 커피 생산국으로 진입한 기록도 있다.

   
▲ 4인 가족 1~2달러면 충분한 노점과일
한국에 알려진 커피는 일명 ‘다람쥐똥 커피’. 이 커피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로 유명하다. 커피 농장의 커피가 익을 무렵 다람쥐들이 빨갛게 잘 익은 커피 열매를 따 먹고 나서 과육은 소화를 시키고 커피의 생두는 그대로 배설물과 섞여 나오게 되는데 이것들을 모아서 말린 것이 바로 '다람쥐똥 커피'다.

비슷한 커피로 인도네시아의 사향고양이(이름만 고양이지 실지로는 족제비에 가까운 동물이다)똥 커피도 있다. 이름은 조금 지저분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모아진 커피 콩들을 씻고 말리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기 때문에 냄새 등은 전혀 없다.

하노이 시내에 차려진 커피판매점에서는 줄 잡아 20여 가지의 커피를 전시하고, 시음기회까지 마련했다. 커피라면 속칭 ‘양촌리 커피(자판기 믹스커피)’ 밖에 모르던 사람도 그 맛의 차이를 알 수 있을 정도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 베트남 전통음식 중 하나인 분짜정식
이 눈치 저 눈치 보던 관광객들은 주섬주섬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한다. 베트남에서 선물용으로 가장 많이 팔린다는 현지 가이드의 귀뜸에 보답이라도 하듯.....

베트남 제2의 수도라 불리는 하노이 시내를 빠져 나온 셔틀버스는 4시간을 넘게 달려서야 하롱베이에 도착했다. 중간에 그 흔한 휴게소에 정차하겠지 하는 바램도 그만, 한국의 농촌 풍경과 엇비슷한 들녘과 가옥 몇 채 만이 눈의 띌 뿐. 한국과 다른 것은 2모작(남부지역은 3모작)을 하는 탓에 벌써부터 모내기 준비에 바쁘다는 것.

하롱베이 호텔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눈가를 아른대는 오토바이 행렬 속에서 생김새는 달라도 농촌 들녘에 앉아 풀을 뜯고 있는 흰소가 우리의 고향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다 잠이 들고 말았다.

<계속> * 다음에는 '신이 내린 선물' 베트남 '하롱베이' 편이 이어집니다.

/베트남 하노이=장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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