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선 대학가는 물론, 정치권 공방의 핵심쟁점이 됐던 '반값 등록금' 논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는 지난 26일 국공립대 등록금의 85%를 차지하는 기성회비에 대한 '부당이득 반환소송'에서 법원이 학생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올 연초까지 이런 저런 이유로 주변 대학들의 눈치를 봐 가며 5% 내외로 삭감을 결정했던 대전지역 주요 대학 또한 '생색내기용 인하결정'이 또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법원 “징수 법적근거 없어”… 등록금 편법인상 제동

문제의 핵심은 국공립대 등록금 중 85%가량을 차지하는 기성회비를 거둘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1심 법원의 판결로부터 시작됐다.

이 판결이 2, 3심을 거치거나 이대로 확정될 경우, 일선 대학들은 기성회비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은 물론, 10년 이내에 거뒀던 기성회비도 모두 돌려줘야 한다. 특히 국공립대가 최근 10년 동안 거둔 기성회비는 10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돼 일파만파의 후폭풍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6부(정일연 부장판사)는 지난 27일 서울대와 부산대 등 8개 국공립대 학생 4219명이 각 대학 기성회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에서 “기성회는 학생들에게 1인당 10만원씩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재판부는 “기성회비는 규약에 근거해 회원들이 내는 자율적인 회비로 법령상 등록금에 포함되는 수업료나 입학금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학생들이 기성회비를 직접 납부할 법령상 의무를 진다고 볼 수 없어 징수된 기성회비는 모두 부당이득에 속한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에서 학생들은 소송 비용 등의 이유 때문에 자신들이 낸 기성회비 전체가 아닌 10만원씩만 돌려달라고 청구했다. 하지만 이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 기성회비 전체에 대해 반환청구 하는 수순이 불가피 할 전망이다. 

한편, 한나라당 김선동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국공립대가 거둔 기성회비는 1조6391억원에 이른다. 이들 대학의 등록금 총액 1조9122억원의 85.7%에 이르는 규모다. 이 같은 자료대로라면 이들 대학이 거둔 기성회비는 매년마다 다르지만 10년 동안 거둔 총액은 10조원을 웃돌 전망이다.

'반값 등록금' 논쟁 다시 격화될 듯

아직까지 1심 결정에 불과하지만 이번 판결은 국공립대의 기성회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불씨가 됐다는 점에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기성회비는 1963년 ‘대학, 고·중학교 기성회 준칙’(옛 문교부 훈령)에 따라 학교 시설 확충에 사용하도록 마련됐다. 그러나 기성회비 징수를 직접 규정한 별도의 항목도 없을 뿐 아니라 관리업무 또한 각 대학별로 자율에 맡겨져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동안 기성회비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논란이 이어져왔다. 대학들은 인상 절차가 까다로운 수업료 대신 기성회비를 대폭 올려 수입을 늘려왔다.

민주통합당 김춘진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의 경우, 2010년 수업료는 지난 2006년에 비해 5% 오르는 데 그친 반면, 기성회비는 30%나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또 기성회비는 시설·설비비, 교직원 연구비, 기타 학교운영 경비 등에만 쓰도록 돼 있지만 교직원 수당으로 지출되는 등 목적 외로 쓰이는 경우도 많았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이 같은 폐해로 인해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국공립대에 사립대와 같이 기성회비를 없앨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사립대들은 1999~2000년 재학생들이 기성회비 반환 소송을 제기하자 기성회비를 폐지하고 수업료로 일원화했다.

문제는 이 같은 법원 판결이 그동안 쟁점이 되어왔던 국공립대 '반값 등록금' 논란을 다시 점화시킬 수 있다는데 있다. 사립대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등록금으로 논란의 중심에서 한발 비껴갔던 국공립대가 이번 결정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당장 기성회비를 수업료에 포함시킬 수도 없다. 이미 2012년도 등록금 고지서가 나간데다 필요한 후속조치를 하기에는 물리적으로 힘든 현실이다. 항소 등 조정시간을 가진 후, 최종 판결까지 간다고 가정할 때, 국공립대 기성회비 문제는 올 한해 대학가의 최대 이슈가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대전지역 한 국립대 관계자는 "사립대에 비해 자체적으로 운용할 수 없는 재원이나 근거가 좁은 국립대에 이 같은 결정이 그대로 적용될 경우, 국비지원 등 특단의 조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국공립대 존립자체를 흔드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우려감을 표했다. /장중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