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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미소의 공존, '씨유 어게인 캄보디아'<캄보디아 여행 2> 전쟁과 혼란의 수레바퀴 속에도 자신의 삶에 순응
장중식 기자  |  dje4552@dj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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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2.22  17: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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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톤레샵 호수 수상촌. 우기를 대비해 건조한 배를 나무틀 위에 받쳐 놓은 모습.

   
▲ 쉼 없이 운행하는 수상촌 관광용 선박
국적도 잃어버린 톤레삽 ‘수상촌’의 삶

[대전경제=장중식 기자]베트남 못지 않게 전쟁을 많이 치른 나라, 하지만 승리보다는 패전의 아픔이 큰 나라. 특히 내전과 정치혼란으로 인해 150만 이상의 목숨이 구천을 떠돌았던 곳. 캄보디아만큼 서글픈 역사를 가진 나라도 드물다.
‘킬링필드’ 이야기는 후자에 하기로 하고, 이 전쟁이 낳은 또 하나의 산물이 수상촌이다. 바다인지 호수인지를 구분치 못할 정도로 넓은 톤레삽 호수에는 고국으로 가지 못한 이들이 만든 수상촌이 있다. 캄보디아에서도 낯선 이방인 취급을 받고, 고국인 베트남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이들은 ‘떠나지 못하는 보트피플’이다.

   
▲ 수상촌에서 짐을 나르는 주민들
동양 최대의 호수로 알려진 톤레삽은 메콩강으로 인해 탁한 황토색을 띄지만, 해질녁 황금색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1년 중 대부분은 수심1m 이내로, 면적은 2700평방킬로미터이다. 여름청 우기(몬순 기간)에는 호수에 프놈펜 부근 메콩 강에 흘러 들어가는 톤레사프 강이 역류하는 탓에 주변이 침수되면서 면적은 1만6000평방킬로미터까지 늘어나고, 수심도 9m에 이른다.

이로 인해 600여종 이상의 어류가 넘쳐난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어류로 캄보디아 국민의 단백질 섭취량이 60%를 책임질 정도다. 시엠립에서 약 6km 떨어져 있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쉼없는 발길과는 무관하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궁핍 그 자체다.

   
▲ 뱀을 감고 포즈를 취하며 "1달러~"
관광객을 실은 배가 출발하기가 무섭게 따라 붙는 작은 배들. 그나마 모터가 달린 배들은 사정이 좋은 편이다.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듯 위태롭게 보이는 쪽배를 저어와 불쑥 내미는 한 마디. “원 달러”
과일을 파는 것 보다 구렁이를 칭칭 감고 사진촬영 모델이 되는 것으로 1달러를 요구한다. 때로는 바나나며 망고스틴 같은 열대과일을 가져 와 1~3달러에 판다. 대부분 어린 아이들이다.

이와는 달리 아예 배에 오르는 아이도 있다. 손님들에게 다가가 간단한 안마(등 두드려주기)를 하고는 그 댓가로 1달러를 요구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의미를 아는 걸까. 어른들은 언제 찍었는지 관광객들의 사진이나 모습을 담은 접시를 판다. 그렇게 그렇게 구걸 아닌 구걸을 하는 사람들.

   
▲ 캄보디아식 샤브샤브. 야채+국수
베트남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 돈보다 달러를 선호한다는 점. 베트남에서는 ‘1달러=1000원’의 공식이 통했지만, 이곳은 ‘1달러=2000원’이 통용된다. 그렇다고 베트남보다 물가가 비싸지도 않다. 오랜 기간 식민지 지배를 많이 받아서인지 모르지만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달러가 공통화폐로 인식되는 듯 하다.

병원은 고사하고 변변한 약국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수상촌 자체의 학교가 있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피폐하다. 

   
▲ '곰 세마리'를 노래하며 물건파는 아이들
동양최대의 호수로 일컬어지는 톤레삽에서 2시간 남짓 수상촌의 기억을 뒤로 하고 세계 최대의 인공호수로 널리 알려진 西바라이(WEST BARAI)호수를 찾았다. 캄보디아 수라야바르만 1세때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인공호수. 유일하게 남은 크메르 제국의 인공저수지로 알려져있다.

수상가옥과 비슷한 판자촌이 즐비한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물건파는 아이들이 따라 붙는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언제 배웠는지 우리나라 동요 ‘곰 세 마리’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합창한다. 노래가 끝나기 무섭게 ‘1대1’로 관광객에게 달려들어 국적불명의 팔찌를 건넨다. 4개에 1달러, 나중에는 5개에 1달러까지 가격이 내려간다.

“아줌마 날씬해요” “아줌마 예뻐요”라는 말도 잠시, “아까 샀어”라고 말하면 “난 못팔았어요(아까 산 거는 다른 아이라는 뜻)”라며 재차 물건구입을 강요한다. 행여 못 들은 척 지나쳐버리면 “아줌마 뚱뚱해요~”라는 비난(?)도 날릴 줄 안다.

   
 
전쟁과 죽음, ‘킬링필드’는 끝나지 않았다

킬링필드는 1975년~1979년까지 캄보디아의 군벌 샐로스 사르가 또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라는 무장단체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을 말한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크메르 루주가 3년 7개월간 전체 인구 700만 명 중 1/3에 해당하는 200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을 학살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려온다.

한 가지 주목할만한 것이 있다면 크메르루주군이 200만명을 죽였다는 것은 미국이 자신의 과오를 숨기기 위한 과장에 가깝다는 것. 킬링필드의 희생자 200만명 중 80만명은 미군의 민간인 시설 폭격으로 사망하였고, 크메르루주군의 숙청으로 사망한 희생자가 30여만명, 이후 고립정책으로 인한 기아와 질병으로 추가로 80여만명이 사망했다는 주장이다.

캄보디아는 전쟁 당시 중립을 나타냈음에도 공산 게릴라 세력 내전과 베트남전 여파로 외세 공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 관광객들에게 유골을 공개한 '왓트마이사원'
우리는 흔히 크메르루즈 지배아래에 200여만명이 학살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캄보디아에선 그 학살과 더불어 미군의 무차별 공습을 이야기 한다. 1970년대 미국은 캄보디아에도 마구잡이 폭격을 가해 20만에서 5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 게다가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캄보디아도 고엽제로 인한 피해가 남아있다.

‘작은 킬링필드’라 불리는 왓트마이 사원은 캄보디아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남겨 두었다. 고문과 학살, 그리고 이름조차 모르는 유골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것도 사람이 뚜렷하게 볼 수 있도록 야외에 유리관 안에 모셔둘 정도로...... 어린아이는 물론, 임산부까지 잔혹하게 죽인 역사를 당당히 물증으로 전시하는 그들의 속내는 또 어땠을까.

물론, 가난의 책임이야 그들의 몫이지만 내전과 외세에 의한 전쟁 등으로 인해 그 어느 나라보다 후유증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지원은 동정이 아닌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유네세프 등 각종 국제자선단체들이 캄보디아를 돕고 있고, 우리나라 또한 각종 단체들이 후원의 손길을 아끼지 않고 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루 막노동에 2~3달러를 버는 어른들. 하루 종일 1달러를 외치며 물건판매와 구걸에 물들은 아이들. 과거, 한국전쟁 후 우리나라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다는 생각.

   
▲ 밤이면 천국으로 변하는 '유러피안 스트리트'
앙코르 스마일 쇼 & 유러피안 스트리트’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일까. 찬란했던 크메르 왕국의 부활을 꿈꾸는 씨엠립에는 또 하나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앙코르의 미소를 관광 상품화하려는 노력. 그래서 1차적으로 탄생한 것이 ‘스마일 쇼’다.
5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극장은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후문. 그래서인지 1시간 넘게 펼쳐지는 공연에는 한글 자막과 영어 등 4개 국어가 동시에 올라온다. 내용은 앙코르왓에 담겨진 내용 중 선과 악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평화를 추구하는 메시지 등이 파노라마 형식으로 펼쳐진다. 배우는 물론, 배경화면까지 겹쳐지면서 마치 4D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여기에 화려한 조명과 레이저에서 물줄기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칠 게 없다.

공연의 감동을 잠시 접어 두고 이색투어에 나섰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툭툭이’의 진가가 발휘된다. 두 시간 대여에 5달러 내외면 충분하다.

   
▲ '반갑습니다' 노래하는 평양랭면 북한처녀들
유러피언 스트리트(Europian Street)는 시엠립 리버 주변에 있는 올드마켓 스트리트에 형성된 거리로 영화 툼레이더 촬영을 위해 시엠립에 머물렀던 안젤리나 졸리가 즐겨 찾으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그 중 ‘레드 피아노’는 유명한 카페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필히 찾는 코스이기도 하다.

1시간 내외면 거리 곳곳을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이곳은 낮과 밤이 전혀 다른 모습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이곳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더 많다. 특히 유럽과 미주에서 온 관광객이 70~80%에 이를 정도다. 여기서는 먹고 마시는 음주문화가 대세를 이룬다.

조그만 카페 하나에도 어김없이 라이브 음악이 흐른다. 도우미 아가씨들이 저마다 자신의 술을 팔아달라며 손님 옆자리를 찾는다. 노상에서 30분 남짓한 마사지도 3달러면 충분하다. 여기에 1달러 팁을 주면 그야말로 ‘왕 대우’를 받는다는 후문. 유명한 앙코르 맥주에 라이브 음악, 시끌벅적한 밤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거리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질 않는다. 그저 한적한 시골마을과도 같다.

   
▲ 팔찌 파는 소녀. 왠지 측은한 마음만...
가난과 미소의 공존, “씨유 어게인, 캄보디아”

2000년 동안 인도와 중국의 영향을 받은 나라. 12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이웃 어느 나라 부럽지 않을만큼 번성을 누렸더 크메르 제국. 하지만 프랑스 식민지를 받았고, 20세기 동안에는 전쟁의 혼란을 경험한 불운의 나라. 또 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했지만 그 이후 다시 정치적 불안정을 겪고 150만 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목숨을 잃은 나라이기도 하다.

"미래를 겁내지 말고 과거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는 캄보디아의 격언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 결코 화 내지 않고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들. 어느 곳에 있든 어떤 처지에 있던 자신의 삶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나라 캄보디아.

뚜렷한 모계중심의 사회, 결혼을 하기 위해 신부집에 지참금(사례금)을 준비해야 한다. 한 때 한국과도 국제결혼이 성행했지만, 자국민들의 유출을 막기 위해 ‘외국인과의 결혼금지령’까지 내렸던 나라, 바로 캄보디아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앙코르 스마일 쇼'
1500만 남짓한 그곳에서는 노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 평균수명이 갓 60세를 넘은 나라. 젊은이와 어린아이가 많다는 것은 곧 그들이 ‘성장 가능성 있는 나라’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손님으로부터 받은 1달러에 두 손을 모아가며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는 툭툭이 기사, 과일 한 접시에도 웃음으로 화답하는 현지가이드. 하지만, 가난과 환경 등 열악한 조건으로 늘 아쉬운 것이 많은 나라. ‘메이드 인 캄보디아’라고 찍힌 상품을 구경하기 힘든 나라(실제 캄보디아에서 판매되고 있는 2차산업제품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박3일간의 짧은 여정 속에서 앞서 보았던 ‘바이욘의 미소’가 그들의 모습에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생각에 ‘짧지만 긴 여운’이 남았다.

미리 준비해 놓은 선물(아이들이 입다가 작아져 쓸모가 없게 된 옷가지 몇 점)도 모자라 목에 둘렀던 수건마저 주고 싶었던 캄보디아 아이들. 그들이 맞는 내일은 조금 더 낳은 미래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뒤로 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굳바이 캄보디아~! 씨유 어게인 캄보디아~!”

캄보디아 씨엠립 = 장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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