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중식 본지 대표

대기업 총수 일가로부터 전직 대통령 세금 추징논란으로까지 5월 말, 한국이 비자금 논쟁으로 뜨겁다. 이들로부터 터져 나온 비자금 규모는 1~2억이 아니다. 적게는 수십 억에서 수백 억이 넘을 정도로 천문학적 금액에 이른다.

이런 사실을 지켜 보며 일반 서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 진위여부를 가리는 일이야 사법당국에서 밝혀 줄 일이지만 크게 두 가지로 반응이 교차한다. 어떤 방법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챙길 수 있었을까라는 궁금증과 더불어 서글픈 일이지만, 일견 부럽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속칭 ‘종이 회사’로 불리는 유령 법인을 해외에 설립하고 정상적인 거래인 것처럼 자금을 주고 받아 챙기는 수법까지 공공연히 확인될 정도로 실체가 속속 드러난 대기업 총수의 비자금 조성 과정은 씁쓸하기만 하다.

그도 모자라 해외에서 조성한 비자금을 국내로 유입해 사용하고 이를 다시 국외로 유출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까지 받고 있는 그들이 만든 비자금은 또 다른 지하경제의 표본이라는 점에서 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어디까지가 비자금이고 비상금인가

문득, 온라인 포털사이트에 재미있는 글이 있어 옮겨 본다.
지난해 이 맘때쯤 재혼전문 사이트 온리-유(www.ionlyyou.co.kr)가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래(대표 손동규)와 공동으로 실시한 전국 재혼희망 ‘돌싱남녀’ 500명(남녀 각 250명)을 대상으로 전자메일과 인터넷을 통해 ‘전 배우자와 결혼생활 중 챙긴 월 비자금 규모와 그 용도’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가 흥미롭다.

이 결과, 남성은 평균적으로 월 30만 원, 여성은 월 20만 원씩 비상금으로 적립했다고 응답했다.

비상금의 용도 또한 성별로 다소 엇갈렸다. 남성은 ‘개인적 유용’(46.8%)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가족의 비상시 대비’(40.8%)라는 답변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여성은 60.8%가 ‘가족의 비상시 대비’라고 답변했고, ‘목돈을 만들기 위해’(20.4%)와 ‘친정 지원용’(12.0%) 등으로 답해 차이를 보였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설문 관계자는“남성들은 친구나 동료 등과의 외부활동에 소요되는 자금이 많지만 여성들은 가족 중심적 사고가 강해 비자금을 조성해 결국 가족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석했다.

이와 더불어 포털에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올라와 있다. 직장인이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사용할 때 나름의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익명의 필자는 비자금과 비상금의 차이를 지적했다. 모든 비자금이 ‘검은 돈’은 아니라는 점과 그동안 남몰래 모아온 돈을 비상 시 가족을 위해 내놓는 순간, 비자금은 비상금으로 탈바꿈한다는 것. 나를 위해 쓰면 비자금, 가족을 위해 쓰면 비상금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검찰 수사와 더불어 사회적 지탄을 받는 부류들의 비자금은 어떤 용도로 쓰일까. 앞서 익명의 필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가족을 위해 쓰면 비상금이 된다’는 말이 통용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에게는 가족이 곧 자신이고, 진정한 가족은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라는 말로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수천 억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할 수 있었던 근간은 그 회사에서 일하는 종업원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 같은 이익을 남긴 것은 그 회사의 브랜드를 믿고 물품을 구입하거나 용역서비스를 받아 온 소비자이기도 하다.

그들이 만든 비자금, 원 주인에게 돌려줘야

때문에 그들이 불법적으로 만든 비자금은 더 이상 ‘비상금’의 개념이 아니다. 조세포탈의 개념을 넘어 ‘검은 돈’ 자체는 범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현행 법률로 그 모두를 국고로 환수 할 수 없지만, 어떤 방법이든 국민의 몫으로 되돌리는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일선 가정에서 몰래 만든 비자금이 때로는 가족간 마찰과 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물며 회사 구성원과 국민의 눈을 피해 만든 비자금이라면 어떤 이유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시금 포털 사이트 글로 돌아가 보자. 우리나라 직장인 평균 비자금 보유액은 367만원이라는 설문결과가 있다. 거기에 ‘만원’ 글자를 빼고 ‘억원’이라는 숫자를 넣은 것이 ‘검은 돈’이다.

우리의 평범한 서민들은 아내 몰래, 남편 몰래 술 값을 챙기고 용돈을 챙긴다지만, 그들은 누군가로부터 뽑은 혈세를 해외로 빼 돌린 것이다. 행여 그들이 사후에라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며 적발된 비자금을 사회로 환원한다면 다소 위안이 될 지 모르겠다.

천원 짜리 지폐 하나가 제3세계로 가면, 그들의 세끼 식량이 된다. 하루에도 수백 명이 이 세상과의 질긴 인연의 끈을 가난이라는 죄로 놓아야만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푸르른 초록이 짙어가는 5월 하순, 평생 김밥을 말아가며 목돈을 굴리고 굴려 만든 전 재산을 후학발전에 써 달라며 대학에 남긴 ‘김밥 할머니’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