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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시를 읽자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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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19  22: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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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이사장)

수증기나 물보다 눈(雪)을 보면 누구나 깨끗하고 밝고 신비함을 느낀다. 그래서 눈은 흔히 시의 제목이 된다. 김삿갓은 ‘눈’(雪)이란 시에서 눈이란 말을 한 번도 안 썼다. “狗走梅花落, 鷄行竹葉成”(개가 달리니 매화꽃이 떨어지고 닭이 지나니 댓잎이 생기는구나.)

①“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들,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대,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곽재구/사평역에서) ②“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 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 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트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정호승/첫눈 오는 날 만나자) ③“첫눈이 내리는 날은/빈 들에/첫눈이 내리는 날은/캄캄한 밤도 하얘지고/밤길을 걷는 내 어두운 맘도 하얘지고/눈처럼 하얘지고/소리 없이 내려 금세/고봉으로 쌓인 눈 앞에서/나는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는다/시리도록 내 뼛속이/소름이 끼치도록 내 등골이…”(김남주/첫눈) ④“어릴 때 보던 산들은, 다 그냥 있다/그때 놀던 들녘, 뚝에서 싸우던 황소/어릴 때 보던 강들은 다 그냥 있다/그 물살치던 여울, 은빛 고기떼/아주 하늘만큼 큰 큰 포구나무 숲을 아니?/그 숲 우으로 저녁이면 처덮이던 갈가마귀떼/어릴 때 놀던 친구들, 다 그냥 있다/그 술래 찾던 골목, 서녘에 비끼던 노을/어릴 때 보던 하늘은 다 그냥 있다/천지에 내리던 눈, 먼 기적소리/(생각나니? 생각나니?) 오래 오래 길러오던, 내 몫의 송아지/잔칫집에다 팔고 그날 발버둥 쳐 울던 일이, 생각나니? 생각나니?”(이제하/눈 오는 날)

눈은 온 세상 만물을 평등하게 만든다. 온 천하를 새하얗게 덮어버린다. 모든 유색의 것들이 가려져버리고 오직 기본색으로 변해버린다. 그때가 되어야 松柏(소나무와 잣나무)이 쉽게 시들지 않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자신이 불행에 처했을 때 모두 떠나는데 이상적만이 변함없이 귀한 책을 구해다 주고 우정을 지켜주니 그 정을 기려 세한도(歲寒圖)를 따른 추사 김정희의 심정을 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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