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만구 박사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연말부터 양적완화 축소 발표로 주가, 원화가치, 채권시장 약세 우려로 인한 주식 및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이러한 조치계획은 실물경제 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외국자본이 빠져나가게 되어 금융시장의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금융시장은 글로벌경제에서 절대적인 슈퍼 갑의 독점적 지위로 신흥국들이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정부도 금융시장 상황을 지켜본 뒤 비상계획을 가동 새로운 출구 전략을 모색한다는 입장이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본질이 수직적 주인과 종의 체계를 벗어나 수평적 상호협력관계로 개선하자는 의미가 크다고 본다. 그래서 정부도 갑과 을의 종속적 관행을 타파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러한 세계의 경제 구조에도 고질적인 슈퍼갑의 독점적 지위 못지않게 우리생활 내면에도 이러한 권위주의와 사대주의적 사상이 뿌리내려 있어 고쳐지기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최근에 대기업 유업회사에서 대리점에 물량 밀어붙이기로 고발되어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한 대기업 임원이 항공기 승무원을 폭행하여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 임원은 결국 회사를 사직하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에 한 중소기업 회장이 호텔 현관 지배인을 폭행한 사건도 있었다. 그 회장도 회사를 폐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SNS를 타고 빠르게 확산된 여론에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개인 입장에서는 억울한 심정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억울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탈권위주의시대를 살아가는 지혜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매사에 목에 힘을 주고 대접받으려는 이들이 점차 설자리를 읽어가는 세상이 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개인의 인격과 성품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개별 기업에 국한된 문제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우리 산업계의 고질적인 문화로 보는 시각이 팽배해 있었던 결과로 본다. 뿌리 깊은 ‘갑을 의식’이 표출된 사건으로 보는 시각이 바로 그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갑임과 동시에 을이다. 인생역전은 한 순간이라는 말도 있다. 경력을 쌓아 큰 직장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오너가 되면 갑으로 변신할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정점에 서지 않는 한 우리는 한 평생 갑이면서 동시에 을의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관계를 통하여 살아가는 인간 삶에서 어쩌면 갑을 관계는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갑을 관계에서 우리들이 표출하는 문화적 행태이다.

갑이 부당한 횡포를 부리면 을은 또 다른 누군가 에게 똑같은 행동을 하고, 언젠가 높은 자리에 오른 갑은 보란 듯이 을에게 막말을 퍼붓는 그런 행태가 문제인 것이다. 먹이사슬처럼 이런 생각과 행동이 만연한 산업 생태계의 문화를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백화점 직원이 자살을 하고, 본사 직원이 나이 많은 대리점 점주에게 막말을 퍼붓는 등, 갑의 횡포를 알리는 뉴스가 연일 들려오고 있다.
 

갑을 문화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고질적 병폐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접어 두고서라도 갑을 의식은 근절되어야 하는 문화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양극화 문제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높은 위치에 있는 분, 힘 있는 분들이 쓸데없고 불필요한 갑을 의식만 자제한다 해도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따뜻해지고 통합될 것이다. 어떤 위치든 상호종속관계와 상호협력관계의 상생무드가 이루어져야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접을 받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신의 몸에 무겁게 걸치고 있는 ‘갑’옷을 과감하게 벗어 던져 버리자. 갑옷을 벗고 가볍게 비상하는 새들처럼 ‘을’의 마음자세를 가져보자. 금년 휴가는 易地思之하는 마음으로 떠나보자. 가족과의 관계도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김만구/대한건설협회 대전광역시회 사무처장(공학박사,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