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중식 대표

언제나 그렇듯, 각종 부동산 정책이 발표되면 반드시 따라 붙는 수식어가 있다.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서’라는 것이 대다수 주택정책 추진 배경을 설명하는 단골메뉴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서민’들은 정작 그 혜택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실상을 알고 나서 오히려 허탈감만 느낄 뿐이다.

단적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저소득층 대학생 자녀를 둔 세대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전세임대 주택정책을 살펴보면 구호와 현실이 얼마나 다른 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강원도에서 대전에 있는 모 대학교에 원서를 내 어렵사리 자녀를 합격시킨 H씨는 2월 초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큰 혼란을 겪었다.

H씨는 아들이 4년제 대학에 합격한 뒤 400여만 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어렵게 마련했지만 추가로 지출해야 할 비용이 많아 밤잠을 설쳤다. 대학가 주변을 둘러봐도 월 30만 원 이하의 방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부 원룸은 1년 치를 선불로 내야 한 달 분을 깎아 준다는 이상한 셈법이 적용되고 있었다.

전전긍긍하던 H씨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지난 달 20일 LH가 실시한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입주자 모집에 당첨된 것이다. 전세를 얻고 그 금액의 연리 2% 이자에 해당하는 월세를 LH에 납부하면 되기 때문에 한 시름 덜 수 있게 됐다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LH에서 제시한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하느라 대학가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적당한 물건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방을 구하고도 LH 전세임대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기 일쑤였다.

문제의 근원은 까다로운 조건에 있었다.
전세임대주택에 입주하는 대학생들은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전셋집 부채비율 기준을 80%로 정했기 때문이다. 6억 원에 이르는 다중주택(원룸)의 경우 대부분 20~30%는 대출이 설정되어 있다. 여기에 기존 세입자들의 보증금도 부채로 잡기 때문에 선순위 세입자가 되지 않는 한 LH에서 제시한 조건에 맞추기는 어려웠다.

결국 집주인은 집주인 나름대로 자신의 정보를 공개하기를 꺼려하고, LH는 규정적용을 원칙으로 내세우다 보니 세를 구하는 학생들에게만 고스란히 피해가 전가된 셈이다.

뒤늦게 정부가 적용 부채비율을 80%에서 90%로 완화하고, 산정기준인 주택가격을 공시가격의 150%에서 180%로 높이기로 했지만 건물주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대전과 충남지역에만 정시합격자에 한해 1000호에 이르는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입주자모집 공고가 나왔지만 실적은 여전히 미진하다고 한다. 집 주인은 주인 나름대로 까다로운 조건을 맞추느니 일반 세입자를 구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정이 이런데도 LH와 정부는 조건완화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낙관론을 펴고 있다.

이에 대해 임대주택 전문가들은 “대학생들에게 지원해 주는 전세자금으로 대학가 주변에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든지, 일반 임대주택을 매입한 후 재임대 하는 편이 오히려 현실적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1월 중순부터 이달 중순까지 한 달 내내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H씨는 “집을 구하는 내내 구걸하러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다”며 쓴웃음 지어 보였다.

그나마 H씨의 경우 최소한의 혜택이라도 누릴 수 있는 ‘당첨자의 기쁨’을 누려보기라도 했지만, 이 같은 혜택 조차 누리지 못하는 대학생들이 부지기수일 것으로 보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라는 공간에 첫발을 내딛는 새내기들의 눈에 이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상승세가 주춤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모의 등골을 휘게 만드는 대학등록금, 대학가 주변의 높은 주택임대료. 이런 경제적 희생을 감수하고 대학을 졸업한다해도 ‘청년실업자’ 신세를 벗어나기 힘든 젊은이들.

어긋난 대학생 전세임대정책이 젊은이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