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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서 되살아 난 "천년고도 백제의 숨결”<일본 르뽀>- (2) 교토일원의 일본 사찰과 세계문화 유산 '이조성
장중식 기자  |  dje4552@dj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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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2.25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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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최대규모의 청수사 전경
◇ 일본사찰의 정수 ‘청수사’

백제의 장인정신이 오롯이 묻어나는 일본 사찰을 둘러보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한국과는 달리 4학기 체제로 운영되는 일본 학교는 12월이 수학여행 시즌이다. 이후, 겨울철에도 한국관광객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교토는 일본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한겨울 날씨는 쌀쌀했지만 부산 정도의 온도로 인해 추위는 느낄 수 없었다.
일본 대표사찰로 불리는 청수사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9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관광객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마치 한국의 구인사를 연상케 하는 전각의 위엄도 볼만했지만, 특이한 것은 불상을 꼭꼭 숨겨 놓아 사찰이라는 이름이 무색했다. 일본 사찰의 특성상 아무리 작은 불상이라도 몇 단계 문을 넘어서야만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불상을 보고 기도를 올린다기보다는 그저 사찰을 찾아 자신들의 소망을 기원하는 정도의 오랜 관습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뜬금 없는(?) 옹달샘에 모여 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서로를 위안했다. 향 하나 피우고 돌아선 전각 사이로 까마귀 울음소리가 왠지 서글퍼 보였다.

가이드의 말을 빌리자면, 일본 사람들은 까마귀를 길조라 여긴다고. 까마귀 자체가 길조는 아니지만,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를 전달해 준 까마귀를 향해 고마움의 표시로 합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더불어 ‘긍정적 사고’를 갖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엿보았다면 지나친 착각일까.

   
▲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니조성(이조성)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조성(니조성)’

교토 시가지 가운데 있는 평성으로 성의 전역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그 밖에도 니노마루 어전이 국보로, 22개동의 건물과 니노마루 어전에 있는 장벽화는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니노마루 어전의 정원은 특별 명승지로 지정되어있다. 더욱이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도(古都) 교토 문화재중 하나로 등록되어 있다.

도쿠카와 이에야스 장군의 기세와 위엄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중 삼중에 걸친 방어막은 섬세하다 못해 지나칠 정도로 요새화 되었다는 점, 칼 하나에 패권과 시대가 바뀔 수 있는 당대의 역사를 방증하는 일본역사의 한 페이지.
일본의 모든 장군들이 그렇듯, 자신의 심복조차 믿지 못하고 칼을 두개(전투용으로 쓰이는 장도와 자결용 단도) 차게 하고, 문 높이를 키보다 작게 만드는 모습에서 좀처럼 속내를 표하지 않은 일본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 황금 전각이 빛나는 녹원사
◇ 동대사에서 백제의 혼을 엿보다

찬란했던 백제문화를 전수받은 일본. 2층과 3층 벽면을 순금으로 칠해 유명한 킨카쿠 녹원사는 석양 햇살을 받아 한폭의 산수화를 빚어낼 정도로 아름다웠다. 특히 물 위를 비치는 금빛은 모든 관광객들의 카메라 사랑을 독차지 했다.

이어 사슴과 사람, 사찰이 하나로 어루러진 동대사는 현존하는 동양최대의 실내 좌불을 안치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이한 점은 사천왕을 모시지 않고 이천왕만 모신 일주문(?), 우리나라 국보 1호인 남대문의 소실을 의식한 듯, 사찰 주 출입구에 붙인 ‘남대문’이라는 현판을 다른 말로 아예 바꿔버렸다는 사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본 사찰 또한 한반도를 거쳐 갔다는 것과 불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기와 문양은 물론, 처마와 건축양식 등은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사찰과 큰 차이가 없었다.
   
▲ 황금 전각이 빛나는 녹원사

특히 화려한 치장(순금)이나 사슴과 사찰을 ‘패키지 상품’으로 묶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일본의 관광마인드는 우리나라에서도 한번 쯤 고려해볼만한 벤치마킹의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조선의 슬픔 '이총(귀무덤)'에 서다

   
▲ 조선의 슬픔이 묻힌 '이총(귀무덤)'
당초 일정에 잡히지 않는 이총(일명 귀무덤)에 들를 수 없냐는 부탁에 가이드와 렌트차량 운전기사가 한참이나 대화가 오갔다. 이유인 즉, 못갈 이유도 없지만 당초 정해지지 않은 코스를 운행하다가 발생할 지 모르는 사고에 대해서는 면책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일행 중, 팔순 노인과 초등학생이 있어 잠깐이나마 이총을 둘러보는 행운(?)을 얻었다.

귀무덤(이총), 임진왜란 당시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충성하고 일본 자국민에게 조선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일본군이 취한 조치로 탄생한 것이 이총이다.

한반도를 무참히 짓밟은 전리품으로 조선군들의 귀와 코를 잘라 일본으로 보낸데서 비롯된 유래가 반증하듯, 이 곳은 무려 1000여명에 이르는 조선사람들의 영혼이 묻힌 곳이기도 하다.

공교로운 것은 바로 이 무덤 맞은편에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사가 버젓이 위치해 있다는 사실.

언제 구해왔는 지, 잡초가 무성한 무덤 앞에 흰 국화 꽃다발이 놓였다. 관광이 목적인 일행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산 자와 죽은 자의 앞에 놓여진 역사 사이로 또 다른 강이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교토=장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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