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의 위험성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당국이 잇따라 발표한 금융권 대출규제가 일방통행식으로 이뤄져 오히려 서민의 가계살림을 궁핍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제1금융권 대출규제에 이어 금융당국은 지난달 24일 상호금융사 등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마저 규제하는 고강도의 대책을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6월 은행권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핵심으로 했던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에 이은 보완책이라는 명분으로 이뤄진 것이다. 당국은 저금리에 물가는 고공 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확산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대책은 ‘금융권 건전성 관리’를 명분으로 삼기에는 뭔가 부족해도 한참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당장 1000조원대에 육박한 부채증가를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 같은 대출규제는 당장 생계를 위한 대출이 필요한 서민들의 자금줄을 옥죄는 효과로 이어져 대출을 받지 못한 서민들을 고금리 사채시장으로 내몰 수 있다는 것이다.

◆ 말로는 “건전성 유지” 실질로는 “대출문턱 높이기”

문제의 핵심은 ‘대출 도미노’ 현상재발에 있다. 금융당국이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을 옥죄는 배경으로 은행권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증가한 제2금융권 대출규모 때문이라는 것.

실제 지난해 은행권 가계대출은 5.7%(24조4000억원) 늘었지만, 제2금융권 증가율은 9.9%(36조2000억원)로 이보다 훨씬 높았다. 규모면으로만 볼 때도 제2금융권 가계대출은 402조원으로 이미 은행(456조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했을까. 이런 저런 이유가 있다지만, 1금융권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2금융권으로 몰린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일반 시중은행보다 1~2% 포인트 이상 높은 금리를 부담해가면서까지 제2금융권을 찾은 근본원인은 높아지고 좁아진 규제에 있다.

결국, 금융당국의 옥죄기가 풍선효과를 내 ‘제1금융권-제2금융권-사채시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악순환과 관련, 상호금융사 한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정부가 은행권 돈줄 죄기에 나선 뒤 제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몰린 것"이라며 "이번 발표는 곧 돈줄에 목마른 이들을 또 다른 사채시장으로 옮기는 효과만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정부의 보완대책 “믿을 수 있나” 의문

그렇다면 이 같은 지적을 염두에 뒀다는 금융당국의 대책은 무엇일까. 금융당국은 제2금융권에 대한 가계대출 억제와 더불어 서민대출의 어려움을 미소금융, 햇살론, 새희망홀씨 등 3대 서민우대금융의 지원을 강화해 해결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금융위는 미소금융은 올해 상반기 중 쇄신방안을 마련해 저소득과 저신용 서민층에 대한 금융지원 기능을 키우고 햇살론은 대환대출에 대한 보증비율을 기존 85%에서 95%로 높인다는 것이다. 또 새희망홀씨의 올해 공급규모도 1조5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3000억원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이 또한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보증비율을 늘리고 금융지원을 늘린다고 하지만, 금융권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 내에 들을 수 있는 자격(조건)을 갖춘 서민들이 얼마나 될 지는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실제 3대 서민금융을 강화해도 연간 20조원이 넘는 2금융권 대출 수요를 대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3대 서민금융 재원을 모두 합친다고 해도 신규 대출 여력은 2조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번 보완책이 발표되고 있지만, 실제 금융권 문턱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서민들은 ‘발표 따로 현실 따로’ 정책에 쓴웃음만 날릴 뿐이다.

◆ 금융당국만의 문제 아닌 다각적 시각접근 필요

서민금융 문제 해법은 저소득 생계형 대출자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은행권 신규 대출의 32.2%가 생활자금용이었다. 이와 더불어 신용대출과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이용액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계부채 문제가 개선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야 한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지금의 건전성 악화가 실질소득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치솟는 물가로 지출부담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곧 현 정부의 대책은 주로 금융기관의 건전성 유지에 초점을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규제위주의 옥죄기’에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당국만이 아닌 범정부 차원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은 지난 4일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경제실사지표에서도 엿볼 수 있다.

4일 LG경제연구원은 실업률과 이자상환비율, 부채자산비율을 더한 다음에 흑자율을 빼 산출한 가계부실지수가 2011년 4분기에 0.77을 기록, 전 분기에 비해 1.76에 비해 떨어졌다고 밝혔다.

외환위기때 평균 2.93까지 치솟았던 가계부실지수는 2003년 카드사태 이후 하향안정세를 보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크게 높아져 평균 1.22를 기록 중이다. 작년 3분기 1.76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며 4분기 수치도 카드사태 평균 0.94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만큼 가계부실화 위험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자지급부담 또한 낮은 금리수준에도 불구하고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계부채 절대규모가 늘어나면서 이자부담이 늘어난 요인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비은행 금융기관 대출 증가율이 높았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은 "가계부실지수가 높은 수준을 지속하는 것은 높은 부동산 가격, 포화상태의 자영업, 고질적인 적자가구 등으로 축적된 리스크가 해소되지 못하고 누적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 저소득층 배려 등 단계별 ‘연착륙’ 모색할 때

이 같은 발표는 당장 급한 불은 끄고 보자는 식으로 처방을 내린 정부정책의 허점과 연관시켜 볼 대목이다. 실업률과 고물가, 가계부채 규모 등 모든 것이 고리로 연결된 총체적 부실은 외면한 체, 수치상으로 드러난 대출확대만을 줄이고 보자는 근시안적 접근방식의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대출의 성격과 수요 패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후 금융당국만이 아닌 범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한마디로 가계부채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유부터 살펴보지 않고, 대출문턱을 높이는 것은 ‘1회성 처방’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