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중식 기자

나도 모르는 빚이 있다면 어떤 기분일 들까? 평범한 국민들은 자신이 부담해야 할 빚이 있는 지 없는 지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그것은 하루 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한’ 살림살이에 피부적으로 쉽게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게 모르게 늘어만 가는 부채는 얼마나 될까. 국내 한 매스컴에서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내년도 우리나라의 국가 부채는 515조2000억 원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국민 1인당으로 환산한다면 1025만 원 꼴로 4인 가족 기준으로는 4000만원대를 훌쩍 넘는 규모다.
 
이유를 막론하고 한 국가의 살림살이를 짤 때 모자란 예산은 어떻게든 마련해야만 한다. 가장 쉽고 빠른 길이 국채를 발행하거나 외국자본을 빌려오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쌓여만 가는 원리금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한 푼이라도 더 아껴야 할 정부와 산하 공공기관이 수요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해 국고를 낭비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25일 국정감사를 통해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국토부와 산하 공공기관들이 MRG(최소운영수입보장) 수요예측을 부실하게 한 업체들에게 총 398개 사업에 1조4000억원 상당의 용역을 준 사실이 공개되었다. 

이들이 수요를 잘못 예측한 7개 민자도로에서는 올해까지 총 8000억원이 MRG 보상금으로 지급됐다. 여기에 인천공항철도에 지급된 1조1천억원을 더하면 2조원에 가까운 돈이 잘못된 수요예측으로 인해 민자사업자에게 들어갔다는 얘기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등 ‘국민의 혈세’를 먹고 사는 거대공룡으로 불리는 주요 공기업들이 벌인 ‘빚잔치’는 국민에게 실망을 넘어 공분을 살 정도였다.

인천공항철도의 경우, 수요예측을 엉터리로 해서 1조1천억원에 이르는 금액을 MRG 사업자에게 지급하도록 한 한국교통연구원은 국토부와 산하기관들로부터 2005년부터 올해까지 총 29개 사업에 걸쳐 75억원을 수주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구~부산간 민자도로와 서울외곽(일산~퇴계원) 도로 수요예측을 부실하게 한 업체는 국토교통부와 산하기관들에게 각종 용역 명목으로 최근 10년간 211개 사업에 무려 5340억의 수주를 받은 사실도 공개됐다.

문제의 민자도로는 당초 하루 7만4000대가 이용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 뚜껑을 열고 보니 통행량은 3만9000대로 예측대비 52%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사정이 이렇게 되었음에도 불구, 2008년부터 2012년까지 2956억원의 국민세금이 MRG보상금으로 지급됐다. 서울외곽순환도로(일산~퇴계원) 구간도 2007년부터 작년까지 860억원이 투입됐다.
 
사정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부산~울산간 민자도로의 수요를 예측한 B업체도 당초 1일 5만2000대의 교통량을 예측했지만, 실제수요는 2만5천대로 48% 수준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2010년부터 작년까지 국민세금 1032억원이 MRG보상금으로 지급됐다. C업체 또한 국토교통부와 산하기관들로부로부터 각종 용역 61건을 수주해서 720억원을 벌어들였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소속 정우택 의원은 “엉터리 수요예측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서,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 철도시설공단 등 산하기관에서 엉터리 수요예측업체들에게 천문학적인 금액의 용역을 주는 행태는 국민정서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라고 질타했다.

야당에 비해 비교적 정부기관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한 새누리당 국감위원이 이 같은 관행을 지적한 것을 놓고 피감기관의 한 관계자는 “제 식구 감싸주기는 커녕, 더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애써 네 편과 내 편을 운운하는 것조차 우스운 일이지만, 국민의 혈세가 줄줄 새어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국감위원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도 용납키 어렵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공감한 국토교통부가 국정감사 이전, 건설기술관리법 일부개정법률을 7월16일 공포해서 내년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지만, 예측수요, 실제수요의 차이가 30%이상일 경우 용역업자의 고의· 중과실을 조사해서 영업정지를 부과하는 등의 조치는 제한적인 효과일 뿐이라는 게 해당 의원의 주장이다.

영업정지를 맞아도 또 다른 업체가 그 업무를 맡을 것이고 그 업체 또한 동일한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법률적으로 가능한 지는 좀 더 살펴봐야 하지만, 고의적이고도 지속적인 수요예측 오류에 대해서는 좀 더 엄격한 잣대와 기준이 필요하다.

수 조원에 달하는 국민세금을 보조받는 공기업 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수익창출의 증대보다 비용절감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야 한다. 수요를 잘못 예측하고 그로 인해 부족한 자금을 국민의 세금으로 메우는 구조라면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행여 보조금이 부족하다면 그들은 또 다시 다른 방법, 즉 통행료 인상 등 국민의 주머니를 더 털어내는 일에 열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속칭 ‘나랏돈 빼 먹는 것이 최고’라는 인식이 팽배하는 한, 부패의 고리는 끊을 수 없다. 그것은 곧 ‘나랏돈’이 ‘나라 빚’이 되고, 결국 국민의 부채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여당 의원의 용기 있는 ‘제 식구 때리기’가 국정감사장에만 떠도는 메아리로 남지 않길 바랄 뿐이다.

장중식/본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