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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언고사(寓言故事)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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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9.16  18: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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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

중국사람들의 사유체계는 깊다. 오랜 세월 같은 문자를 사용하며 많은 역사와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책을 썼다. 청나라 때 편찬된 ‘강희자전’(康熙字典)에는 총 4만 7035자의 한자가 수록돼 있고 건륭황제 때 편찬된 ‘사고전서’(四庫全書)의 규모는 당시 중국이외의 모든 나라에서 찍어낸 책의 합계보다 양도 많고 내용도 풍부하였다.

한나라 때 반고(班固)가 엮은 ‘예문지 제자략’(藝文志 諸子略)에는 189개의 학파가 있는 데 그 중 유가,묵가,법가,음양가,종횡가,명가,농가,잡가 등 소위 구가자류(九家者流)를 제시해 놓았다.

이제 그 가운데에서 세월이 빚어 낸 지혜와 웃음 몇 편을 찾아보기로 한다.

선진(先秦)편: ① 재주의 쓰임에 대하여 - 송나라의 어떤 사람이 ‘손이 트지 않는 약’을 만들 줄 알아서 그것으로 대대로 세탁업을 운영하였다. 누군가가 이 소문을 듣고, 많은 돈을 주면서 그 비방을 사자고 하였다. 세탁소 주인은 가족들을 모아놓고 의논하였다. “우리집은 대대로 세탁업을 운영했지만 번 돈을 얼마 되지 않는데 이제 그 비방을 많은 돈으로 사겠다고 하니 팔아버리자”고 말했다. 그 비방을 산 사람은 바로 오(吳)나라 임금을 찾아가 ‘손이 트지 않는 약’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때마침 월(越)나라 조사가 오(吳)나라를 침략했는데 오나라 임금이 그를 장수로 임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싸우도록 하였다. 한겨울인지라 두 나라 군사들이 수상(水上)에서 전투를 벌이는데, 오(吳)나라 군사는 ‘손이 트지 않는 약’ 비방덕으로 월(越)나라 군사를 크게 이길 수 있었고 그 공을 인정받아 오나라 임금은 그에게 큰 벼슬을 주었다. ‘손이 트지 않는 약’을 사용한 것은 같지만, 누구는 그것으로 큰 벼슬을 얻었고, 누구는 그것으로 세탁소를 운영하여 근근히 먹고 살았다. 이는 그 재주를 어ᄄᅠᇂ게 활용했느냐에 따라 갈라진 것이다. 여기서 취족이모(聚族而謨)/자기 나름대로의 재주를 갖고 있다 란 말이 생겼다.

② 쌈닭의 훈련과정- 기성자(紀渻子)가 임금을 위하여 쌈닭을 훈련시켰다. 10일이 지나서 임금이 물었다.“훈련은 끝났는가?” “아직입니다. 그들의 교만함이 성하여 자주 말썽을 부리기 때문에 시합장에 내보낼 수 없습니다” 또 10일이 지나 임금이 다시 물었다. “아직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함께 있는 무리들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냉정을 유지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다시 10일이 지나 임금이 또 물었다.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 쪽 저 쪽 두리번거리고 기가 아주 드셉니다.” 또다시 10일이 지나 임금이 물었다. 기성자는 “얼추 되어갑니다. 지금 출전시키면 상대방이 큰 소리를 내거나 위협적인 자세를 취해도 조금도 두려운 기색이 없이 침착하여 마치 나무로 깎아놓은 닭같아 쌈닭으로서 자세를 다 갖추었습니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기성자가 이들 쌈닭을 데리고 시합장에 나가자 모든 닭들이 전의를 잃어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버렸다. (장자에서 뽑았고 질시성기(嫉視盛氣)란 사자성어가 나온 연유이다.

③ 일기양실- 조나라의 도성 한단(邯鄲)사람들은 걸음을 멋있게 걸었다. 연(燕)나라의 도시 수릉(壽陵)의 한 젊은이가 그 걸음걸이를 배우려고 멀리서부터 유학을 왔다. 그러나 연나라의 젊은이는 조(趙)나라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나라의 원래 걸음걸이까지 잃어버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이 되어 마침내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장자 추수(莊滋 秋水)에서 발췌했고 여기서 ‘한단학보’(邯鄲學步)란 사자성어가 생겨났다. 이처럼 중국의 우언(寓言)은 시대에 따라 그 성격을 조금씩 다르게 잡았다. 선진(先秦)이나 양한(兩漢)시대에는 처세경륜의 언론이 주를 이루었다. 위진(魏晋)이나 당송(唐宋)시대엔 글 속에 문인의 취향이 느껴지고 명청(明淸) 시대에는 서민들의 생활 소감이 배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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