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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욘의 미소, 캄보디아' 크메루 번영을 꿈꾸다<캄보디아 르뽀 1> 전쟁과 가난의 번복, 혼돈의 터널을 지나 미래로
장중식 기자  |  dje4552@dj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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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2.17  23: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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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이 한창 피어난 앙코르왓 정문의 연못. 그 뒤로 앙코르왓 신전의 모습이 보인다.

캄보디아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역사와 문화를 먼저 앞세우면 세계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앙코르왓트’가 먼저일테고, 경제와 사회를 앞세우면 가난과 매춘이라는 부정적 단어가 꼽힌다. 

2000년 동안 인도와 중국으로부터의 영향을 받아 온 캄보디아는 그들로부터 전파된 문명을 자국의 긍지로 꽃피웠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동남아시아로 전파한 캄보디아야 말로 고대문화의 꽃으로 꼽힐만큼 번영과 몰락의 세월을 반복했다.

   
▲ 파노라마 식으로 조각된 앙코르왓의 벽화.
12세기에 왕조의 전성시대를 누린 크메르제국은 앙코르와트, 바이욘, 그리고 제국의 수도인 앙코르톰 등 전무후무한 걸작품을 남겼다. 이후, 400년에 걸친 쇠퇴기 후에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고, 20세기 동안에는 전쟁의 혼란을 경험했다.

그 후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했고, 그 이후 다시 정치적 불안정을 겪었다. 1975~79년 나라는 농촌에서 공산주의 게릴라 운동을 펼치던 크메르루즈의 집권으로 황폐화되었다. 인류역사상 최악의 참사 중 하나로 꼽히는 ‘킬링필드’ 사건은 최소한 150만 명에 달하는 목숨을 앗아가는 불운을 겪었다.

   
▲ 앙코르 관광의 필수교통수단인 '툭툭이'
입국부터 '1달러 팁' 요구...여행사조차 '관례'

아오자이의 나라 베트남 하노이를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 40여분 후, 캄보디아 씨엠립에 도착했다. 트랙을 내리자 마자 후텁지끈한 기운이 느껴질정도로 무더운 날씨다. 차림부터가 반바지에 슬리퍼, 반팔 차림. 길게 늘어선 입국심사대를 거쳐 가려면 1달러를 내야 한다. 특별한 이유도 없다. 그저 관례처럼 인식되어버린 ‘수속 팁’이다. 한국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세관직원부터 노골적으로 ‘팁’을 요구한다.

호텔에서 저녁을 마친 후 돌아 본 거리는 한적하기만 하다. 이따금씩 손님을 부르는 ‘툭툭이(오토바이 뒷 좌석에 이어만든 일종의 미니마차)’ 기사들, 그리고 하나 둘씩 귀가하는 사람들 뿐. 오토바이 천국, 베트남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특이한 것은 호텔 곳곳, 사진과 조형물은 물론, 작은 기념품 하나에까지 ‘앙코르’ 유적을 넣었다는 점이다. 바로, 이곳이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앙코르왓의 도시임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 신전을 오르려면 70도에 가까운 계단...
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왓에 서다

화려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앙코르왓은 앙코르 왕국의 수리야 바르만 2세(1113~1150)의 시기에 건립되었다. 도읍을 둘러싼 성벽은 한 변이 약 4km나 되고, 서쪽과 남쪽에는 폭이 넓은 수로가 만들어졌다. 일본의 고대 성에서 엿볼 수 있듯, 중앙사원을 중심으로 외부의 접근을 경계하는 일종의 요새와도 같다.

과거 크메르 제국의 도읍의 중심인 프놈바켄의 언덕 위에는 5층의 피라미드형 사원이 세워지고, 제일 높은 층에는 주사위의 눈처럼 다섯 신전이 배열되고 중앙의 신전에 링가를 모셨다고 전해진다. 현재 남아 있는 앙코르 톰(가장 큰 도시)은 제4기 공사에 속한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원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 앙코르왓을 방문한 수도승 일행과 함께
과거를 잠시 접어두고 현재로 돌아와 보다, 크메르의 고대도시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중의 하나로 꼽히는 앙코르왓이 발견되기까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12세기 전반에 수리아바르만 2세가 건립한 앙코르왓은 동서로 약 1500미터, 남북으로 약 1300미터의 넓이에 이른다. 사원 주변의 운하는 바다를 의미하며 높이 65미터의 중앙탑은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을 나타낸다. 또한 사원의 회랑은 히말라야 산맥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변에는 넓은 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그 외부는 너비가 약 200미터인 수로로 둘러싸여 있다.

옛날부터 북쪽 밀림 속의 큰 도시, 앙코르와트에 가면 반드시 큰 저주가 따른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 앙리 무오는 5일 동안 이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반쯤 묻힌 유적을 탐험하였다. 무오는 앙코르를 발견한 다음 해인 1861년 9월 여름 열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는데 이는 신들의 건축물을 발견하여 천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 앙코르 왓 정문 연못에 피어난 연꽃
밀림 속에 숨겨져 있다가 프랑스 고고학자의 눈에 띈 앙코르왓은 이후, 숱한 전쟁을 겪으면서 황폐화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복원사업에 나섰지만, 이미 황폐화될 대로 무너진 사원 곳곳을 보면서 ‘국력’과 ‘문화’의 상관관계가 적지 않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캄보디아 최대의 관광지로 꼽히는 앙코르왓을 둘러 본 ‘서양 코쟁이’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자못 궁금하다. (보는 각도와 마음에 따라 첨탑이 3개 또는 5개 이상으로 보인다는 가이드의 말처럼.)

세계문화유산이 그렇지만, 이곳 앙코르왓은 한마디로 ‘대하드라마’로 비유될 수 있다. 왕조의 흥망성쇠는 물론, 그 시대의 정치와 사회, 문화를 고스란히 담은 조각들. 그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사원을 빙 둘러가며 이어지는 벽화는 전쟁과 출산, 그리고 형벌 모습까지 다양한 당시 모습을 생생히 들려주고 있다.

   
▲ 보는 각도마다 다른 바이욘의 미소불상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바이욘의 미소

앙코르왓과 함께 앙코르 문화의 쌍벽을 이루는 앙코르톰은 앙코르 왓에서 북쪽으로 1.5km떨어져 있다. 한변이 3km의 정사각형 모양인 앙코르 톰은 높이 8m의 붉은 흙인 라테라이트 성벽과 너비 약 100m의 수로로 둘러싸여 있다.

앙코르 톰과 중앙 사원인 바욘은 크메르왕조가 붕괴되기 직전인 1,200년 자야 바르만 7세에 의해 지워진 캄보디아 사원 중 최후이며 바로크양식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곳으로 인구 한 때 상주인구 100만을 기록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띄는 대목은 미소를 가득 머금고 눈을 감고 있는 자야바르만 부처 모습. 일핏 보기에는 그 모습이 그 모습같지만 엄밀히 표현하자면 같은 모습의 부처모습은 하나도 없다. 총 54개에 이르는 부처상은 돌 하나 하나를 쌓아 올려 만든 것. 곳곳에 무너지거나 빠진 돌로 인해 모양은 어그러졌지만, 그 미소만큼은 천년의 세월을 무색케 할 만큼 여유롭다. 마치 늙으신 부모님의 주름과도 같아 보였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 왕의 집전장소였던 테라스 공원의 모습
이어 남쪽문의 돌 거인상과 나가(Nagas), 왕이 집전업무를 보던 코끼리의 테라스, 문둥병으로 힘겨웠던 왕의 조각상 등 앙코르톰 자체가 하나의 예술집성촌에 다름 없다.

바이욘 사원(Bayon)에서는 동서와 남북으로 뚫린 두 개의 도로에 의해 도시가 4등분된다. 앙코르톰의 북쪽에는 왕궁이 자리잡고 있고 그 중앙의 수로에 걸쳐서 바이욘 사원이 건립되었다. 북대문, 서대문, 남대문을 갖추고 동쪽에는 승리의 문과 사자의 문이 있다.

왕궁의 왼편에는 피미안나카스 사원(Pimean Akas)과 바푸욘 신전(Baphuon)이 있고, 그 위쪽으로는 코끼리 테라스(Elephant Terrace)가 있다. 당시 이곳을 여행한 중국인에 의하면 성 입구의 문지기들은 죄인과 개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성 안에 둥근 지붕으로 된 귀족의 집은 동향이고, 왕은 이곳에서 하루에 두번씩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호화스러운 옷을 입고, 국사를 처리하였다고 한다.

   
▲ 돌로 만든 사원을 뿌리채 삼키는 모습이 장관..
부모와 자식의 인연, ‘타프롬 사원’

영화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진 타프롬 사원은 12세기에 지어진 규모가 큰 불교 사찰로 유명하다. 앙코르톰에서 동쪽으로 약 1km 떨어져 있다. 수백년간 방치된 동안 반얀트리라 불리는 벵골보리수의 거대한 뿌리들이 사원을 감싸고 이끼 낀 돌 사이를 파고들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 준다.

오랜된 나무를 둘러싸고 자라는 새 나무들. 마치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주고 자신은 묵묵히 사그라드는 ‘모자의 정’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거대한 사원의 재료인 석축을 뚫고 지나는 나무 뿌리들. 하지만 그 속에도 공생의 화두는 담겨져 있다.

   
▲ 아직도 멀기만 한 사원복구공사장
나무뿌리가 사원의 건축물들을 가르고 훼손했지만, 그 뿌리들이 돌들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인간이 아무리 위대한 신의 피조물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만든 구조물이 나무와 세월이라는 자연 앞에서는 한 없이 왜소한 존재라는 것. 하지만, 결코 등지고 살 수 없는 공존의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시간이었다.

하루 반나절이 넘도록 이 많은 사원을 둘러보려면 도보로는 어림없는 일. 일명 ‘툭툭이’라 불리는 자가용(오토바이+마차의 조합형태)을 이용하는 편이 수월하다. 1인당 30달러(한국 돈 3만3000원 내외)를 지불하면 관광 내내 얼음물 제공은 물론, 맛있는 파인애플과 망고 등을 곁들여 내 준다.

   
▲ 40도의 직사광선을 가려주는 현지가이드
더운 날씨에도 불구, 이를 운전하는 기사들은 불평불만이 없다. 그저 기다리고, 안내하고, 멈추었다가 다시 출발하고. 한국으로 치면 일종의 ‘개인택시’와도 같아 면허증을 받아야 한다고.

아이스바 2개를 내밀며 1달러를 외치는 노점상(흥정 끝에 3개를 얻었다), 국적불명의 팔찌 4개를 건네며 1달러를 외치는 꼬마아이들. 어찌보면 구걸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비교적 고수입층에 속하는 가이드나 툭툭이 기사, 그 누구도 이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일이 없다.

   
▲ 단 하나의 불상도 똑같은 미소는 없다는 '앙코르톰' 입구의 모습

(다음은 "국적도 좌표도 잃어버린 '톤레샵 수상촌" 편이 이어집니다)

/캄보디아 씨엠립 = 장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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