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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자존심의 나라 베트남, 그 속내를 보다편협된 시각 많아...외국에 대한 열등감 & 동경심 교차
장중식 기자  |  dje4552@dj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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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2.15  20: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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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쌀 수출 2위, 소박하고 풍족한 분짜정식
전쟁과 유교문화, 고달픈 여성의 삶

1시간 남짓 주어진 짧은 시간에 시장 곳곳을 둘러보기엔 무리수였다. 도로 변으로 나오자 우리나이로 한 50~55세는 되었을까. 베트남 전통지게(한쪽 어깨에 메고 앞 뒤로 바구니가 있음)에 과일을 잔뜩 실은 아주머니가 10분도 넘게 따라 다니며 팔아달라고.

 한화로 2000원 남짓한 ‘2달러’를 벌기 위해 쫒아 다니는 상인을 보며 1970년대 강원도 간이역 앞에서 바구니 가득 담은 옥수수를 팔러다니시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베트남에서는 여성이 가사일을 주도한다는 사실. 물론, 남자도 일을 하지만 노동시간과 노력을 비교한다면 여성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과일을 팔 때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물건을 배달해 놓으면, 나머지 판매는 여자가 도맡아 한다. 그 시간에 남자들은 삼삼오오 길거리 좌판에 모여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소소일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 차창 밖으로 보이는 베트남의 학교 전경
볼 수 있었다.

한국과는 국제결혼도 많아 ‘사돈의 나라’로 불리는 베트남. 머나 먼 한국 땅으로 시집을 온 여인들을 보며 ‘참 억척스럽게 일 한다’고 생각하지만 베트남 현지와 다를 바 없다. 오랜 기간 전쟁을 치르며 남자가 귀해진 탓도 있지만, 중국의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온 탓에 베트남 여인들이 ‘이중고’를 겪는 셈이다.

 

한국에서도 종종 이슈화된 이야기지만 베트남 여성들의 ‘한국행’은 녹록치 않다. 지금은 결혼 전, 각종 교육과 강좌 등을 통해 한국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 수 있지만, 과거 ‘묻지마 결혼’이 성행했던 시절,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이들의 삶은 여전히 고달프다.

많이 희석되었다고 하지만, 한국의 노총각(농촌 총각이 전부는 아니지만)과 결혼한 이들은 밤낮으로 고된 농사에 매달려야 했다. 그래도 그들에게 한국
   
▲ '없는 거 빼 놓고 다 있는' 베트남의 야시장
은 ‘코리안 드림’ 그 자체였다. 환율차이로 인해 한국에서 친정으로 보낸 돈은 10배 이상의 가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중개업소’에 엄청난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고, 한국에 와서는 낯선 가족문화와 환경으로 힘든 삶을 영위해야 했다. 속칭 ‘다문화 시대’라는 표현으로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숙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한국 남성들이 베트남 여성에 대해 오해 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고 전통모자인 ‘롱’을 쓴 여인은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세계 그 어느 여성보다도 자존심과 끈기가 있는 여성이 바로 베트남 여성이다. 쉽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한 번 마음에 둔 남성에게는 상상 이상으로 봉사하고 순종하는 것 또한 베트남 여성의 매력으로 꼽힌다.

   
▲ 어딜 가나 넘쳐나는 과일. 베트남의 한 마트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호감이 가는 남성이나 교제를 한 남성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심이 많아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안부를 묻는다는 것. 또한, 속칭 한 눈을 팔다가 적발되면 상상 이상의 복수(?)를 할 만큼 집요하고도 무서운 여성이 바로 베트남 여성이라는 현지가이드의 말에 동행한 남성관광객들, 잠시 침묵모드로 돌입.

“베트남 여성이 최고라더니, 아예 여기서 살지 그래~~”라며 베트남 여자 칭찬에 열을 올렸던 남편을 향해 부인 쏘아부친다. 머쓱한 남편의 입장을 알기라도 하는 듯, 현지가이드가 마이크를 잡았다.

“세계 모든 여성분들의 공통점은 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 주는 사람들은 누가 뭐래도 통하는 법이잖아요?”

센스 만점의 말에 관광객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베트남의 하루가 또 저물어 간다.

   
▲ 어딜 가나 넘쳐나는 오토바이 행렬.
베트남에 대한 오해와 진실

중국과의 항쟁 1,000년, 프랑스와의 투쟁 100년, 다시 미국과의 싸움 8년. 베트남 민족은 끊임없이 침략자에 억눌려 가난과 질병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그 어떤 이념도 아닌 그들의 가족과 민족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그 오랜 세월을 견뎌온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자연 조건의 영향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그들만의 끈기와 인내를 지니게 되었다.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지형학적 특성은 곧 지역별 문화차이를 반들었다. 북부와 중부인은 험악한 자연 조건과 홍수, 한발 등의 자연 재해를 겪어 부지런하고 인내심과 의지가 강하다. 이같은 이유로 인해 베트남 혁명가을 주도했던 대다수의 인물이 중부 사람이다.

   
▲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베트남 시내 풍경
반면, 호치민시를 중심으로 한 남부 사람은 자연 조건의 혜택으로 개방적·낙천적인 성격을 지녔다. 언어 또한 지역별 차이가 많다. 북부가 표준으로 발음이 명료한데 반해 남부는 부드럽고 가벼운 면이 있고 중부는 강한 어조가 많다.

우리가 생각하는 베트남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그들의 속내를 제대로 알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앞서 기술했듯이 베트남 하면 ‘전쟁’과 ‘아오자이’ 그리고 ‘쌀국수’를 떠올린다. 부지런하고 억세기만 한 베트남 여성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면면을 들여다 보면 차이는 심해진다.

베트남 국민의 장점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친근하고 정이 많다는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다른 동남아 사람들과는 달리 손님을 접대하고 맞이할 줄 안다. 이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은데, 열대지방의 낙천성 때문인지 외국인을 보면 피하지 않고 친근감 있게 대한다. 인간관계에 있어 상대방의 이해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던지 셈법 또한 밝다.

이와 함께 베트남인들은 손재주가 아주 좋으며 부지런하다. 중고자동차 수리는 물론, 조각과 목공예 기술은 어디에 내어놓아도 우수하다.

특히 잦은 전쟁과 민족적 자존감으로 외세에 대한 배척감이 존재해 있다. 아무리 내전 중이라도 외세가 밀려올 경우, 무조건적 협력을 이룬다. 세 번에 걸친 대몽항전, 19~20세기의 대 프랑스·대 미국 전쟁이 좋은 예다.

반면, 베트남인들의 단점은 지나치게 체면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과 다소 배타적인 자존심이 늘 공존해 있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은 모계중심의 사회이면서도 남자의 존재를 늘 앞세운다는 점이다. 얼핏 보기에 ‘남성천국’과도 같지만 전쟁과 가족부양 책임은 늘 뒤따른다. 한 가족 중 장남이 군대를 가면 나머지는 면제를 받는다. 이 경우, 가족을 책임지는 것은 장남이 아닌 막내의 몫이 된다. 한마디로 ‘책임 균등’이 적용되는 셈다.

결혼문화를 보면 베트남이 얼마나 젊은 사회를 유지하는 가를 알 수 있다. 대체적으로 18세를 전후해 결혼을 생각하고 여자 나이가 24세가 넘으면 노처녀로 전락(?)한다. 베트남 여인들은 ‘(피부가) 하얗다’는 말을 좋아 한다고.

오토바이 천국으로 불리는 베트남에서 미니스커트나 아오자이를 입고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여성들이 많다. 그런데 한결 같이 방진마스크를 쓰고 있다. 공기가 탁해서라기 보다는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더 강하다는 것.

   
 
베트남의 자존심 ‘호치민’과 ‘일주사’

베트남 사람에게 공통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한국 사람에게 ‘백의 민족’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베트남 사람에겐 일종의 ‘자존감’이 있는 듯 보였다. 1세기에 걸쳐 계속된 식민지와 내전, 그리고 강대국과의 전쟁 등을 거치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일견, 우리에겐 그들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사회 주의 국가로 ‘적대적’ 시각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데올로기를 넘어 민족의 자존심, 나아가 언제라도 내 조국을 위해 총을 들 수 있다는 자존감으로 보아야 옳을 듯 싶다.

   
▲ 기둥 하나에 사찰을 올린 일주사(한기둥 사원)
이튿날 다시 찾은 하노이 시내 바딘광장에서 그 면면은 여실히 드러났다. 바딘광장은 베트남의 호치민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1945년 호치민이 독립 선언문을 낭독한 곳으로 건국기념 '독립'과 '통일'이라는 두 가지 위대한 업적을 남긴 호치민. 휴일이면 수많은 시민이 모이고, 평소에도 호치민 묘를 찾는 시민과 관광객을 많이 볼 수 있다.

흐트러진 복장과 자세의 군인들과는 달리 호치민 묘소를 경비하는 의장대의 모습과 이 곳을 참배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경건한 모습에 이르기까지 마치 이곳이 우리나라 저 북녘의 ‘그 모습’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행 출국게이트
프랑스, 일본과 싸워 베트남 독립을 이뤄낸 지도자. 평소 폐타이어로 만든 샌들을 신고 소박한 생활을 즐겼다고 전해지는 그는 ‘호 아저씨’라 불릴 정도로 베트남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우연의 일치인 듯 모르지만 호치민 묘역을 끼고 돌아 5분 남짓, 베트남 유일의 건축방식을 자랑하는 ‘한 기둥 사원’이 위치해 있었다.

소박하지만 화려한 사원을 떠 받치고 있는 기둥 하나. 아마도 그것이 베트남 국민들에게 흐르고 있는 자존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 바람이 싱그럽다. (베트남 편 끝)

* 다음에는 ‘앙코크르 왓’ ‘바이욘의 미소’ 캄보디아 편이 이어집니다.

베트남 하노이 =장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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